광장의 “미친” 여자들 (4)
광장과 방 사이에서


유년기의 거역과 광기가 지금도 내 등을 밀고 있다.
 
“미친년”
어릴 적부터 자주 듣던 말이다. 어른들도 또래들도 내게 그 말을 쉽게 던졌다. 그들이 이상하다고 여기는 말이나 행동을 하거나, 자기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하찮게 여기거나, 사람들이 갖는 흔한 믿음들을 믿지 않거나,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거나...... 사람들이 나를 미쳤다고 할 이유는 부지기수였고, 그때 이미 내 인생이 엇나가리라는 걸 예감했다. 나를 향한 비난의 말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별도로, ‘미친년’, ‘삐뚤어진 애’, ‘엇나가는 아이’라는 말은 나에 대한 간략하고 정확한 설명이기도 했다. 나는 스스로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착한 아이가 아니었고, 착한 아이들이 갑갑하고 싫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큰딸인 나를 양반집 규수로 만들고 싶어 하는 아버지와의 싸움과 그의 폭력이었다. “시키는 대로 해라!” 라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그가 죽고 내가 일흔인 지금도 생생하다. 어떻게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귀가 시간이 늦은 대학생 ‘딸년’을 현관 구석에 처박아놓고 발길질을 하다가, 커다랗고 검은 무쇠 가위를 집어 들고 머리카락을 싹뚝싹뚝 잘랐다. 나는 잘못했다는 말도, 때리지 말라는 말도, 울음도 없이, 눈을 감은 채 고스란히 당해주었다. 그의 살기 어린 눈빛과 발길질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를 죽여버리고 싶은 내 속 분노를 누르고 있었다. 겉으로는 별수 없이 따라주더라도 내 속은 늘 반항과 말대꾸와 의문으로 부글거렸다. 강요의 정도가 심할수록 더 엇나갔고, ‘니가 틀렸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가 싫어하는 비정상인 방식과 상황과 물건과 행위 들에 꼴렸고, 매질을 감수하고라도 비정상인 짓들을 해야 사는 맛이 났다. 사는 맛은 그때 이미 죽을 맛과 비슷한 말이었고, 그럼에도 죽을 작정을 한 적은 없다. 

10대 중반과 20대 거역과 광기의 시절, 내가 왜 죽고 싶지 않은지와 왜 마저 미쳐버리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죽고 싶도록 힘들었지만 죽을 작정은 해본 적이 없고, 내 안팎의 모순과 부조리에 미칠 것 같았지만 선을 넘어가 버리지 못했다. “진짜로 미친 사람은 자기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내게 빗대봤지만, 미치지 않은 것은 물론 미칠 것 같은 내가 옳다고 여겨졌다. 아버지의 규율이 틀린 건 알겠는데, 아직 내 가치관은 만들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죽음과 삶, 미침과 멀쩡함, 밤과 낮, 가출과 귀가, 순응과 거역, 선과 악, 자긍과 자괴, 폭식과 구토, 포만과 허기, 극기와 포기, 도벽증과 발각 욕망, 열정과 허기, 집중과 중독, 여성임과 여성 경멸...... 그 사이들을 훌쩍훌쩍 넘나들며 죽음으로 끝장내지도. 선을 넘어 타락하지도, 진짜 미쳐버리지도 않은 상태로 계속 헷갈리며 떠돌았다. 이미 망가졌다고 생각했고, 더 망가지지 않는 게 비겁하게 여겨졌다. 망가지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의 금지 때문인가, 내 속 두려움 때문인가. 상상 속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그를 대체할 남자 어른과 여자 어른들을 만들어놓고 순종하는 여자아이와 처벌받는 여자아이를 번갈아 상상하며, 달콤하고 비루하게 밤을 새웠다. 

중학 시절 살던 상도동 시장 바닥에는 괴상한 옷차림으로 실실 쪼개는 웃음과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흘리며 돌아다니는 여자가 있었다. 두려웠다. 여자가 두려운 건 아니고, 이미 ‘미친년’ 조짐이 있는 내가 마저 저렇게 될까봐 두려웠다. 한편 부러웠다. 저렇게 정신을 놓아버리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그리고 설레었다. 괴상한 옷차림과 몸짓과 냄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놀라 피하는 사람들을 향해 터뜨리는 실없거나 폭발적인 웃음은 나를 설레게 했다. 쿵쿵대는 심장을 다독이며 한바탕씩 멀찌감치에서 뒤쫓았다. 여자는 지린내와 시궁창 냄새가 심한 봉천동 산동네 하꼬방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 무렵 내게서도 악취가 났다. 액취증. 천형(天刑) 같은 ‘암내’. 냄새는 가난이나 질병보다 빠르게 사람을 고립시킨다. 냄새는 관계보다 훨씬 먼저 상대에게 당도한다. 사람들은 냄새를 맡고 표정을 바꾸며 뒤로 물러난다. 표정을 바꾸지 않으려 애쓰는 표정도 다 보였다. 악취를 덮으려고 향수를 썼고, 더 심한 악취가 났다. 가까이 가지 않고, 팔을 들지 않고, 여름이면 쉬는 시간마다 학교 화장실에서 겨드랑이를 물로 씻고 소다(1)를 발랐고, 겨울이면 남들은 가장 싫어하는 추운 자리를 선점하려고 새벽 등교를 하고, 사람을 피해 통행금지 근처의 첫차와 막차를 탔고. 사람들의 쑥덕거림을 유체이탈로 버텼다. 미친년을 쫓아가다 보면, 내 겨드랑이 냄새도, 자기혐오나 자괴도 사라졌다. 

(1)    어디서 들은 정보인지 확실하지 않은데, 소다 가루를 겨드랑이에 바르면 땀이 덜 난다고 생각했음. 냄새를 줄이는 효과는 없었고, 땀과 소다가 뒤섞여 옷의 겨드랑이 부분이 누렇게 변색되었고, 빨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1964년 3월 “국민학교”를 입학했고, 1980년 2월 대학을 졸업했다. 자기혐오와 광기의 시절이었던 10대 20대를 온통 박정희 치하에서 보낸 거다. 반복되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속 “근면, 성실, 절약”은 성장기였던 내 근육과 신경 줄과 뇌에 깊이 새겨졌고, 터무니없고 웃긴 습관들로 지금도 남아 있다. 학교에서 기피의 대상이었던 내가 그들을 이기는 방법은 학교 성적이었다. 미친년 소리를 듣던 온갖 외연에도 불구하고, 학교 성적으로 입증되는 “성실성” 혹은 “똑똑한 아이”는 부모와 교사와 학생들 속에서 나를 허물어지지 않게 했다. 그 덕에 성실 강박과 중독 성향과 열정은 생애 내내 내 안에서 한 덩어리로 뒤엉켜버렸다. 

도벽도 있었다. 필요해서도, 필요가 없어도 훔쳤다. 허기를 메워주는 긴장과 전율(戰慄). 보편의 규율과 법과 상식을 일단 불신하고, 손톱으로 흠집을 만들고 틈을 벌려 그 속 무언가를 끄집어 올리는 손맛의 쾌와 불쾌의 도돌이. 새벽은 도둑질에도 독존에도 좋은 시간이다. 발각당하고 싶다는, 발각당해야 멈출 수 있다는 핑계. 도벽을 통과해 나오고도 내 속 열정과 허기는 늘 다른 불허와 금지의 목록들을 탐했다. 중독이 시작된 거다. 휴지기는 있었지만 도벽에 대해서는 십 대 버릇이 일흔까지 왔다. ‘작가’라는 게 돼서 이제는 말을 훔치고 산다. 장면과 표정과 욕설을 훔친다. 광장 여/자들이 무심코 뱉은 말, 짐과 몸을 끌고 가는 모양, 후원 물품 줄에 달려가는 모습, 누가 다가오면 먼저 악을 쓰는 표정, 공짜 밥 앞에서의 주눅과 모욕을 몰래 훔쳐 모은다. 위험하고 무례하지만 멈출 수 없다. 내 도벽은 사라진 게 아니라 글쓰기라는 행태로 바뀐 것뿐이다. 둘 다 내 생애 중독 목록 중 하나다. 독약(毒藥). 독이자 약이다. 

광장과 방 사이에서
7년째 광장을 들락거리고 있다, 노숙자도 되지 못하면서.
광장에 들어서면 시선과 표정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당사자로서 보이고 싶지 않음 직한 장면은 못 본 척하며, 그럼에도 본다. 상대와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 위치를 찾아 구태여 보려고 한다. 이럴 때 나는 권력자이고 잠입자다. 학계의 용어 해설을 떠나 말하자면, 모든 존재와 상황은 내게 우선 타자이자 대상이다. 자신조차 타자로, 대상으로 놓고 하는 생각과 글쓰기를 즐긴다. 그러니 타자화니 대상화 운운하는 비난을 받더라도, 나는 본다. 봐야 쓸 수 있다. 보는 자이자 쓰는 자의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믿을 건 나 하나 뿐이다. 아무도 나를 믿지 않아도, 나는 나를 믿겠다.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두려움이, 어떤 상황에서는 짜증과 지겨움이 감정 밑바닥에서 스며 올라온다. 어떤 주눅과 굴종과 아첨은 마주보기 힘들고, 어떤 질척거림과 끈적거림에는 비위가 상하거나 입속에 욕이 담긴다. 이런 감정들을 차가운 인식이 꺼뜨린다. 외양이 아닌 이면(裏面)과 서사를 궁금해하기. 관리 불가능한 분노 앞에서는 일단 물리적 거리부터 만든다. 타자와의 경계에서 심리적 물리적 충돌과 갈등의 순간에, 내 안에 잠복해 있는 자기방어의 감정들이 매번 스멀거리다가, 잦아든다. 혐오, 두려움, 더러움, 구토감, 징그러움, 넌더리, 냉소...... 표정과 시선을 관리하느라 일단 무표정으로 응하더라도 그 감정들을 회피하거나 흘려버리지 않고, 나중에 다시 불러와 홀로 마주한다. 상대에 대해서야 미처 모르는 거고, 내가 주목하는 것은 나다. 대체 나는 왜 그랬는지 두고두고 노려보며 느리게 우려낸다. 천착하되,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멀리 둔 채 묵히기도 한다. 때론 내 쪽 감정을 더 명확하게 알기 위해 그 사람, 그 장소, 그 정황을 다시 만나러 간다. 그 새 사라졌으면 다시 가고 더 기다린다. 혹은 유사한 장면을 찾는다.

광장에 갈 때마다 나는 우선 잠입자다. 때로 침입자이고 때로 방관자다. 혼자 갔을 땐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 광장 귀퉁이나 중앙 계단에 오래 앉아, 행인을 바라보는 노숙인들의 시선과 그들을 힐끔거리는 행인들의 시선을 관찰한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느낀다. 상대에 따라 무표정을 유지하거나 다양한 표정을 꺼낸다. 예수쟁이들의 마이크 소란을 뚫고 경찰과 안전요원들의 임무를 관찰한다. 광장에는 언제나 단속과 감시, 동정과 동냥과 거절, 모욕과 경멸, 혐오와 외면, 방치와 유령 취급, 발각과 은폐, 간섭과 회피, 은혜와 죄가 뒤엉켜 흔들리며 흘러 다닌다. 심상치 않은 무질서가 잉태되어 자라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발전과 미래를 향한 일방향의 무빙워크에 올라타 그 위에서도 달리고 있는 세상에서, 등을 돌려 중지하고 퇴행하는 존재들의 웅성거림 혹은 아우성. 늪. 습지. 더럽고 냄새나고 불온한 존재들의 서식지로서의 광장. 그곳을 무표정한 채 노려보면서 나는 좀체 일어나지 않은 소요와 폭동을 그리워하다, 도화선을 찾아 몽유병자처럼 광장을 떠돌다, 돌아온다. 허탕이다. 그럼에도 여기가 아니면 대체 어디란 말인가. 

돈에 대한 욕망과 낙관이 인구 중 누군가를 잔인하고 치명적으로 추락시키는 구조인 자본주의는, 잉여를 예정하고 돌아가는 체제다. 과잉 생산된 물품을 버려야 시장과 기업이 돌아가듯, ‘잉여 인간‘을 버려야 시장과 국가가 돌아간다. 광장은 잉여 인간들이 고이는 공간이다. 모든 경쟁에는 끝이나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생긴다. 국가와 자본이 분류하는 역할과 용도에서 탈주한 신체들. 그 신체들의 ’비루하고 추한‘ 생명력이 불러일으키는 불안. 광장을 지나는 ‘시민’들은 노숙인들을 보면서 자기 속 두려움을 본다. “여차하면 저렇게 된다.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 밀려난 사람들의 쓸모는 덜 밀려난 근로자들의 안도와 불안과 성실이다.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를 목표로 온갖 줄 서기로 작동된다. 경쟁의 줄이 작동하는 한 밀려난 사람들은 계속 발생한다. 밀려난 잉여들도 광장과 도처에서 줄을 선다. 무료급식, 후원물품, 공공근로, 노숙인 의료, 복지 상담, 쉼터 입소. 노숙판은 말살되지 않는다. 살아 있어도 죽음 편에 배치된 존재들. 아직 죽지 않았으나 이미 지워진 사람들. 일부는 선별되어 복지기관이라는 효율적인 수용 플랫폼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거리와 광장과 대합실을 떠돈다. 강제집결과 집단이송과 집단학살과 집단소각을 노골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교양 있는’ 권력과 국민들은 야만을 면할 비용지불에 합의한다. 이미 죽음 편에 배치된 존재들이 죽기를 기다리는 비용이다. 죽음 편에 배치된 사람들에게 자살과 자유 죽음의 구분이니 죽음의 자기결정권이니 하는 단어들은 웃긴 소리다. 죽음 쪽으로 밀어넣고 왜 떨어졌냐고 비난하는 시민들. 손을 놓게 만들어놓고 손 놓는 일을 죄라고 말하는 신앙인들. 광장의 여/자들은 그런 인간들을 믿지 않는다. 

광장 사람들에 대한 내 위치는 상대에 따라 다양하고 혹은 뒤섞여있다. 인권 활동가, 작가, 지인, 친구, 모르지는 않는 사람, 모르는 사람...... 내게 후원물품을 받는 사람 중 일부는, 들을 때마다 아니라고 알려줘도 한사코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작가라는 정체성은 늘 장착되어 있다. 도둑질도 불사한다. 많은 경우 내 글쓰기는 도둑질이고, 어린 시절 도벽의 연장이다. 다시 한번 나만 나를 믿는다. “광장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글쓰기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 문장은 내 입장이자 주장이고 대상이 된 광장 사람으로선 다를 수 있다. 그들 입장에서 오해, 손해, 모멸감, 수치감 등의 가능성이 있다. 오독은 불가피하다.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다가갈 수도, 보고 듣고 말을 나눌 수도 없다. 쓸 수도 없다. 그 사이와 과정에서 나는 자주 분열한다. 분열은 내가 선택한 삶과 생각과 글쓰기의 상태이자 태도다.   

그/녀들이 자기 자신으로 나를 만나듯 나도 나 자신으로 그/녀들을 만난다. 시혜와 동정, 감사와 존경 따위는 금물이다. 그/녀들 또한 말로는 웅얼거리더라도 내심으론 절대 감사 따위는 하지 말기를. 언론 인터뷰에서 “감사할 줄 모르는 노숙자들도 많다”며 일부 노숙인들을 비난한 신부와 수녀와 목사 들의 오만을 기억한다. 

광장의 ‘미친’ 여/자들
여성 홈리스들의 노숙 경로와 일상은 빈곤 이전에 남성중심 사회의 폭력성과 직결된다. 가정 안에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비롯한 남성들에게 다양한 폭력을 당하다가 “살기 위해서” 집을 나왔고, 혼인과 동거, 일자리나 노숙 현장에서도 여성이어서 당한 이야기들이 ‘흔해 빠’졌다. 자녀를 낳은 여자들의 모성은, 때론 ‘징그럽고’ 때론 “악랄한 년” 소리를 듣는다. 남자들로 인한 갖은 피해 내력 서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결혼이든 동거든 남자와 살고 싶다거나 사귀고 싶다는 바램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해서”라는 거고, “사랑하고 싶어서”란다. 

‘뻔뻔스럽고’ 당당하게 “그래, 나 미쳤다” 라고 떠드는 여자들이 있다. 혹은 억울함과 빈곤과 분노와 치욕이 자기 속으로만 향해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여자들도 있다. 그 어디쯤에서 마침내 아예 미쳐버린 여자들도 있다. 누구도 다가가지 못하게 먼저 악다구니를 지르는 여자들도 있다. 정신적 상태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50대 말 여자 하나는 여자들만, 엄마와 언니와 할머니와 시어머니만, 광장 사람들 중에서도 여자들만 욕한다. 60대 말 여자는 항상 짐 보따리를 등에 짊어지고 지하도에 서 있었다. 무거우니까 짐을 내려놓고 앉아계시라고 하면, “어떻게 갓난아기를 바닥에 내려놓느냐”고 했다. 여인숙에서 심정지로 발견되어 공영장례를 치렀고, 시신인수를 포기한 동생들이 공영장례에는 함께 했다.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아기를 빼앗긴 채 쫓겨났고, 그 아기가 얼마 후에 계곡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누나의 가출 반복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아기를 빼앗기고 쫓겨난 여자를, 아이를 버리고 도망나온 여자가 비난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최근까지 주변 남자들에게 맞고 맞고 맞아 온 게 주요 생애 서사이지만, 여전히 남자를 만나고 싶어하는 여자들도 많다. 한 발달장애 여자는, 한동안 내 연락을 받지 않으면 어떤 남자와 동거하는 중이다. 길거리에서 만나면 쑥스러워하거나 피하다가, 어느 날 자기가 먼저 연락을 한다. 남자와 헤어진 거다. 폭력과 수급비 도둑질을 참다 참다 결국 신고해서 “빵에 쳐넣어 버렸”단다. 하도 많이 당해서 ‘쳐넣는’ 방법은 잘 알고 있다. 이젠 남자는 끝이라더니, 요즘 또 연락을 안 받는다. 혼인과 동거가 여덟 번째까지 이어졌는데, 요즘 아홉 번째가 진행 중인가 보다. 멀리는 가지 않고 광장 근처 쪽방촌에 살고 있는 건 분명하다. 몇 번째 동거였던가. 둘이 광장을 떠나 경기도 어디로 이사를 갔다가, 남자에 의해 고립과 감금과 폭력을 거쳐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당한 경험이 공부가 된 여자다. 노숙과 방을 들락거리는 40대 말 여자는, 어느 남자 노숙인을 붙잡기 위해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 그녀에겐 뿔뿔이 헤어진 자녀가 이미 셋인데, “어떤 년 놈 하나 자기를 찾으러 오지 않는다”고 술주정을 한다. 자기가 원하는 옷의 색깔과 모양을 세세하게 주문하던 70대 할머니는, 열심히 맟춰서 가져가도 자주 퇴짜를 놨다. 몸 파는 년이 입던 옷이라고도 했고, 귀신 붙은 옷이라고도 했다. “옷을 살에 대보면 느낌이 딱 온다”고 했다. “아기 우는 소리가 싫다며 돌도 안된 나를 아버지가 벽에 집어 던져 ‘간질’(뇌전증)이 시작됐다”는 40대 여자는, 10대 중반에 “살기 위해서 집을 나왔다”고 했다. 여러 싸구려 노동의 와중에 결혼과 동거와 시설 생활이 이어졌고 늘 가출과 도망 후 노숙으로 결말이 나더란다. 그때마다 “살기 위해서” 거리로 나왔단다. 결혼과 출산과 남편과의 경제활동 중 I.M.F로 사업이 망하고 정략 이혼을 했다는 60대 후반 여자는 서울역과 인천국제공항을 자주 왕복하며 산다. 공항에서 노숙하면서 전철 요금이 없어 서울역으로 오지 못하는 젊은 남자 노숙인들을 먹이느라, 광장 무료 급식 줄에서 받은 도시락과 빵과 음료수들을 나르기 위해서다. 50대 여자 하나는 하루치의 욕심 하나로 하루씩을 산단다. 먹을 거든 입을 거든 신을 거든 아니면 누구랑의 싸움이든, 오늘만 살 작정으로 하나만 욕심내고 쫓아다니다 보면 하루가 빨리 간단다. 언제부터 ‘미쳤’는 지 알 수 없다던 70대 여자는 시설과 교도소와 정신병원 들로 이송되며 갇혀 지내던 언젠가부터 아예 자신 안에 꽁꽁 갇혀버렸는데, 그래도 바깥이 좋다며 마지막 정신병원을 도망 나와 광장으로 돌아왔고, 그 병원 사무장은 광장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서울역으로 여자를 잡으러 왔다. 병원으로선 죽기 전까지는 돈이다. 노숙하면서 식당 설거지를 하는 60대 후반 여자는 “쎄빠지게” 번 돈으로 30대인 작은딸의 대학 학비 대출금을 아직도 갚아나가며 생활비까지 대주고 산다. 그녀는 옆방 남자의 성희롱이 무서워 자기 몫으로 받은 공공임대주택을 놔두고 노숙을 하고 있다. 서울역 서부역 어느 빌딩 주차장에서 아는 남자로부터 오래 발길질을 당하다가 숨이 끊어진 40대 여자. 결혼생활 중 두 딸을 낳았던 그녀는, 후원물품을 건낼 때마다 더 ‘불쌍한’ 어린 여성 노숙인에게 주라며 사양하곤 했다. “딸 같아서”라며. 건강과 영양소 정보에 편집증적인 40대 여자는 ‘몸을 팔아’ 영양식품과 화장품을 사댄다. “남자 하나만 잘 만나면 인생 확 뒤집어진다”는 거고, 그러려면 아들을 낳아줘야 한단다. 얼마 전부터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는데, 아직 광장에 산다. 이대를 나왔다나 서울대를 나왔다나 하는 60대 여자 하나는, 미술을 전공했다나 영화를 전공했다나 하는 소문도 있는데, “미화도 좀 해줄거지?” 라고 묻길래 “난 미화는 못하니까 차라리 자기가 거짓말을 해” 했더니 자기는 또 거짓말은 못 한다며 아직 입을 안 열고 있다. 

광장과 거리와 쪽방과 병원과 교도소와 시설과 국제공항 사이를 떠도는 여자들. 누군가는 몇 번이나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고, 누군가는 어느 날부터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죽었거나, 시설이나 병원이나 감옥에 갇혔거나, 다른 도시의 광장으로 흘러갔거나, 혹은 아무도 모르는 방이나 거리에서 아직 버티고 있을 거다. 죽지 않고 갇히지 않았다면 “살기 위해” 밖에서 떠돌고 있는 거다. 

광장의 ‘미친’ 여자들이나 수용소에 갇힌 여자들에겐 조상들이 많다. 한반도 역사만 따져도, 제대로 된 기록 없이 주로 ‘악녀’라는 추문과 비사로만 전해지는 폐비들이나 권력다툼의 끝자리에서 죽거나 겨우 목숨을 부지해 궁에서 쫓겨난 궁녀들에서 시작해, 자기 시대를 욕망과 능력으로 열렬하게 살다 가부장제에 갇히거나 쫓겨나 ‘비참한’ 마지막을 살다 죽은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우선 몇 명만 소개하자면, 허난설헌(1563~1589, 조선의 시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재능을 펼치지 못한 채 스물일곱에 요절), 나혜석(1896~1948, 화가·작가. 이혼과 자유연애의 대가로 사회적 추방을 당한 채 행려병자로 사망), 김명선(1896~1951, 시인·배우. 식민지 근대의 신여성이었으나 빈곤과 고독 속에 생을 마감), 권하자(1940~2013, 일명 ‘맥도날드 할머니’. 학식과 교양을 지녔으나 노년 빈곤과 사회적 고립 속에서 여성 노숙인으로 생을 마감) 등은 모두 남자들의 세상에서 저항하거나 밀려서 ‘그 구역의 미친년들’로 생을 마감했다. 경제 문화적 하위계층이어서 자취를 찾기 더 어려운 기생과 ‘창녀‘와 부랑인 여자들도 부지기수다. 한반도 바깥으로 보면, 추근(秋瑾, 1875~1907 : 중국 혁명가·여성해방운동가. 청조에 맞선 무장혁명에 참여했다가 처형당함), 반옥량(潘玉良, 1895~1977 : 중국 화가. 어린 시절 인신매매를 겪었으나 화가로 성장. 프랑스 망명 생활 끝에 파리에서 사망),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  : 프랑스 조각가.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어 30년을 보낸 뒤 그곳에서 사망), 젤다 피츠제럴드(Zelda Fitzgerald. 1900~1948 : 미국 작가·화가. 정신병원 생활을 반복하다 병원 화재로 사망),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1926~2009 : 미국 사진가. 생전 무명으로 보모 일을 하며 살았고 노년 빈곤 속에 사망. 사후 세계적 작가로 재평가) 등이 있다. ’마녀‘라 불리웠던 빈민여성이자 치료사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사라져도 자리에는 기억이 묻어있다. 묵살당한 말들과 폐기당한 살림살이와 몸 뒤에도 기억은 남는다. 나는 인권 활동을 빙자해 그/녀들의 자리를 둘러본다. 기둥 옆, 화단 앞, 국기게양대 아래, 계단참, 계단 뒤·아래·위, 편의점 옆, 무료급식과 후원물품 줄, 천막 예배의 줄이나 의자, 대합실 의자와 쓰레기통. 다시서기센터 앞과 커피 자판기 옆...... 짐을 끌며 자리를 이동하고, 뙤약볕 아래 서 있고, 모퉁이에서 자다 쫓겨나고, 멸시를 받아내거나 피하고, 거절당하고, 통성기도와 찬송가를 불러제끼고, 공중화장실이나 어느 구석에서 싸고, 술에 취하고, 담배를 피우고, 경찰과 안전요원을 피하고...... 광장 곳곳에는 그/녀들의 표정과 목소리와 술주정과 냄새와 짐과 이부자리와 옷차림과 헝클어진 머리와 욕설과 웃음과 울음이 남아 있다. 주고받은 수다들과 때론 서사라 할만한 이야기들이 아직 자리에 붙어 있다. 그러다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고, 다른 냄새와 짐과 말이 쌓이다가, 또 사라진다. 광장과 자리는 기록하지 않는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수집하고 기록한다. 그/녀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기억을 되살려 중얼중얼 녹음하고 기록하고 수집해서 일단 쌓아놓는다. 그/녀들 중 일부가 가진 강박과 수집증의 병균(病菌)들, 그/녀들이 사라진 후 아무리 물청소와 소독을 해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병균들이 내 속 병균들과 만나, 내 뇌와 글과 꿈은 점점 심하게 감염된다. 

유년기에 시장 바닥의 ‘미친년’ 뒤를 따라가던 아이가 늙어 노숙인 광장을 드나들며 ‘미친년’들을 따라다닌다. 광장의 여자들을 쫓아다니는 것은 결국 내 속 수렁을 다시 뒤지는 일이다. 무력했던 시절 붙었던 “미친년”이라는 호명의 가해와 피해, 긍과 부, 낙인과 역설을 뒤져, 지금 광장의 ‘미친’ 여자들하고 어떻게든 해보려는 거다. 중독과 열정이 구심력으로만 작동해 나를 안에서 부수기 전에, 바깥으로 뿜어낼 겸 그/녀들을 쫓아다닌다. 훔쳐 보고 훔쳐 들으며 되는대로 수집한 것을 새벽이면 혼자 뒤적거리며 정리라는 것을 해보지만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다. 포기되지도 않는다. 파열할 것 같던 시절 시작돼 이제 50년이 넘은 내 끽연처럼 이 짓은 숨통이자 자해행위다.

광장에 노숙인들이 유난히 많거나, 시끄럽거나 뒤숭숭하고 위험이 느껴지면, 뇌 속 도파민이 돋는 걸 느낀다. 설렘, 욕망, 흥미, 꼴림. 오랜 중독증이고 만성적 뇌 질환이다. “그래, 이게 광장이지!” 싶고, 두리번거리며 주목하거나 끼어들 곳을 찾는다. 노숙인 광장은 자주 탈사회적이고 탈규범적이다. 사회의 가장자리와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사회의 규율을 강제하는 것은 웃기는 짓이다. 그 규율에 맞춰 사는 것은 그들에게 무리이자 불가능이다. 정치와 체제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들은 무정부적 상태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외람되지만, 죽음만 불사한다면 잉여들이야말로 다른 세상의 마중물이다. 법과 경찰과 정부의 지침에 따르는 것은 생존 때문이거나 아직 자기 위치를 광장 바깥에 두고 있다는 착각과 선망 때문이다. 광장 바깥에서 통용되는 돈과 노동, 정의와 불의, 가짜와 진짜, 보수와 진보, 페미와 반 페미, 고급과 저급의 의미와 구분이 광장에서는 해체되며, 이분법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나 29범이야. 내가 30범 되는 게 겁 날 거 같냐?”라며 협박하는 여자를 보며, 두렵지만 속이 후련하다. 아버지의 칼을 뺏어 그를 죽이고, 집과 국가를 생애 내내 떠나버린 여자가 한편 부럽다. 아버지를 죽이지 못해 아버지와도 국가와도 어중간하게 지내온 나는, 기껏해야 글로 복수할 뿐이다. 독기로 ‘지랄’ 맞던 여자가 순해지면, 섭섭하고 아쉽다. 광장 밖 윤리와 법과 상식은 탐낼 만한 재산이 있고 잠가야 할 문이 있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물론 낭만화도 미화도 금물이다. 구조는 별도로 놓고 개인만 들여다본다면 많은 경우 동기는 인간 본성인 이기심이며, 대부분 없는 사람끼리 뺏고 빼앗긴다. 그러나 단순한 도덕을 잣대로 복잡한 맥락과 처지를 재단했다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늘 이면을 탐구해야 한다. 사람을 넘어 관계와 판을 보아야 한다. 

필요한 경우 광장 사람들에게 내가 글 쓰는 사람임을 밝힌다. 그들에게 나는 광장 밖 사람, 후원 물품 주는 사람, 노숙인 인권활동가, 글 쓰는 여자, 질문하는 여자, 자신들의 말과 일상을 훔쳐 팔아먹는 사람이다. 자기 얘기를 글로 써달라고 한 여자들도 갑자기 미워하고 질시하고 의심한다. 일부러 나를 찾아와 자기 얘기는 꼭 책으로 써야 한다며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고서, 헤어지자마자 혹은 며칠 후 없었던 걸로 하자며 녹음도 다 지워달라며 화까지 내는 사람도 있다. 다른 부류의 화자들이 그렇듯 광장 사람들의 촉과 감정과 말의 변덕은 정당하며, 소수자성이 깊은 사람들의 경우 이야기의 사실 여부, 변덕 가능성 등을 더 감안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경유해야 무엇인가를 쓸 수 있다.

어려서 “아버지라는 새끼”에게 당한 성폭력에서 시작해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60대 초반 여자는, 그럴 때마다 단 한 번도 “하지 말라”는 말을 못 했다며 울컥이더니 “한번이라도 아름다운 섹스”를 하고 죽는 게 소원이란다. 10대 중반부터 “몸을 팔기” 시작해 요즘도 가끔 종로 3가에 간다는 비슷한 또래 여자는 “나는 불감증이라 아무 맛도 모르고 돈 주니까 대주는 거”라며 깔깔 웃는다. 그날은 서울역 중앙지하도라는 “공공장소”에 노숙인들이 “있지도 못하게” 단속하는 것에 항의해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 중 6080 또래 여자 여덟 명이 현장 입구에 따로 모여 ‘음담패설’과 노래판으로 난장을 벌렸다. 신고가 들어갔는지 경찰이 와서 조용히 좀 해달라고 하자, 여자 하나가 “날 좀 보소.” 민요 가락에 “조용하기 싫어!”를 실어 선창을 했고 다른 여자들도 함께 열창을 했다. 마침 윤석열이 새만금에다 세계 청소년들을 모아놓고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를 여는 뻘짓을 하던 2023년 8월 무더위와 폭우 때였는데,  뻘짓 덕에 잼버리 대회 대신 관광 대접을 받으러 서울역에 내린 세계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의 노숙하는 할머니들의 열창에 박수도 치고 따봉도 하다가 함께 춤까지 췄다. 

일흔이 되어 돌아보니, 젊은 시절을 죽지도 미치지도 않은 채 통과하면서 생긴·만든 맷집으로 평생을 살아온 느낌이다. 내가 겨우 통과한 파열과 광기의 원인과 조짐들 어디에서 광장 여자들은 이내 미쳐버리거나 추락했다. 늙은 내가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광장 여자들에게로 자꾸 되돌아가는 이유는, 나와 그녀들과 세상에 대고 우리의 광기, 여자들의 광기(狂氣)를 해명하고 싶어서다. 어린 나와 늙은 나와 그 여자들이 함께 광장에서 춤을 추고 싶어서다. 죽음에 닿기까지는, 죽음을 집어들기까지는, 광장의 여/자들과 가능하면 즐겁게 놀고 먹고 화내고 춤추며 투쟁도 하다 사라지고 싶다. 

누군가 내 글에 대해 “징그럽다”며 비난하는 말을 듣고 좋았다. 내가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일단 유발하고 싶은 느낌이 우선 징그러움이다. 징그러움. 손 대기 싫은 것. 보고 싶지 않은 것. 냄새나는 것. 질서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가족과 사회가 건져 올리지 않는 것. 정상성의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없는 것. 나는 징그러움의 물적 실체와 느낌 사이를 잇는 사회적 통념으로서의 정상성을 물고 늘어지고 싶다. 더럽고 추잡하고 괴상하고 징그럽다고 여겨지는 사람과 존재와 상황과 사건들에 관해 글을 쓰는 이유다. 징그러움은 어떤 존재의 속성이며, 징그러운 존재와 징그럽다고 느끼는 자 사이에 내재하는 권력관계를 폭로하는 표현이다. 게다가 말로 내뱉어지기까지 하면, 혐오와 모멸로 전선(戰線)이 갈려 싸움판이 벌어질 수 있다. 내가 글을 통해 만들고 싶은 것은 그 싸움판이다. 

노숙판에서는 항마력(2)이 시험대에 오른다. 없으리라 여겼던 내 속 혐오감을 광장에선 낱낱이 확인하게 된다. 역겨운 냄새와 비굴한 표정과 터무니없는 욕설과 자기파괴적 습관과 구걸과 갈취와 더러움을 보면서, 그것을 느낌이나 윤리 따위로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광장의 어떤 ‘미친’ 여자들은 내 항마력과 인성 밑바닥에 갈꾸리질을 한다. 그럴 땐 일단 무표정한 얼굴을 만들고, 감정도 인식도 정지시키고, 눈도 귀도 없는 사람처럼 딴소리를 건네다 슬쩍 피하고 돌아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다시 간다. 선량함 따위가 아니라 도벽 욕망, 중독, 집요함이며, 생산성과 합리성을 거역하는 퇴행의 습이다. 내가 그녀들에게 무엇이기 이전에 그녀들이 내 안의 무언가를 자꾸 긁어대기 때문에 간다. 그녀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다. 도벽증은 행위 직후의 허탈이 지나면 다시 도둑질을 갈망하듯, 내 뇌가 또 광장으로 가자고 한다. 가서 쇠붓으로 뼈와 살을 긁어 발라내고 피를 흘려 말리듯, 나를 해부한다. 그러면서 나와 내 글은 스스로에게도 그녀들에게도 점점 더 냉혈한(冷血漢)이 되어간다.

(2)    항마력: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이나 사진을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따지는 신조어. 원래 항마(降魔)는 악마의 유혹을 극복한다는 불교 용어이다.
광장의 혼돈이든 내 혼돈이든, 혼돈은 더 들여다보고 듣고 더 재해석되어져야 한다. 답이 없더라도, 한계와 오류에 계속 부딪치더라도, 더 꿰뚫어져야 한다. 글쓰기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은 교훈이나 계몽이 아니라 이성과 지식이 닿을 수 없는 한계를 노출하는 것이며, 거듭되는 노출증을 통해 다른 가능성이나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녀들을 좀 안다고 여기는 순간 욕을 싸지르거나 모르쇠를 하거나 사라졌다가, 어느새 다가와 넉살을 떨며 “밥은 먹었냐”고 묻는다. 때론 그녀들의 난데없는 말 마디에 뒷통수를 맞고 휘청거리다 나를 놓친다. 그러고 나서야 내 인식과 감정과 관점을 다시 의심하고, 내 위치와 입장을 또 바꿔본다. 

나는 작가이고 홈리스 인권 활동가다. 두 신분은 서로 협력하기도 하지만 자주 서로를 배신한다. 변혁운동 활동가를 겸한 작가로서 홈리스 판에 함께 하는 것은 현재의 빈곤 상황 이전과 너머와 이면을 보는 것이다. 구조를 염두에 두되, 구조로는 파악 불가능한 구석 자리에서 시작하는 거다. 전체를 가늠하는 일을 바닥에서 시작하겠다는 거다. 홈리스 개인들의 생애 내력과 사회, 내력이 만든 심리와 감정과 정동, 더러움과 게으름으로 비난받기 십상인 외연 너머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사회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무기력과 탈법과 분노와 일상의 습(習), 괴상하고 뒤틀린 외연과 내면, 욕과 신경질과 분노와 울음과 괴성에서 다른 세상을 향한 열망과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헷갈리고 일단 도망치고 결국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지지나 수긍이 되지 않더라도 현실을 목격하자는 것이고, 현실의 이면과 내면을 더 들여다보겠다는 태도다. 때로는 비굴한 표정에 속으로 신경질이 나고, 어떤 분노나 증상은 위험해서 일단 피하고, 어떤 넋두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피해왔더라도, 또 가서 보고 듣고 만나며 이해해 보려고 하는 반복과 지구력이다. 사회적 위치와 사건들이 개인의 서사들과 교차하면서 누적된 추락과 우울의 깊은 우물, 개인적 재수 없음과 어쩔 수 없음을 어떻게든 사회와 그/녀와 나를 연결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라는 정체성은 누구와든 불화를 일으킬 수 있고, 침입자이자 잠입자임이 발각되면 언제든 추방당할 수 있다. 작가로서의 나는 사람과 상황을 몰래 보고 들으며 일단 훔쳐 쌓아두었다가, 어느 새벽 혼자 뒤적거리며 글을 만든다. 소란과 소요과 증오와 위태로움을 몰래 고대한다. 당사자를 상상 속에 내 맘대로 방에 끌어다 놓고, 다듬고 상상하고 가공하고 편집한다. 그러다 매번 어느 중도에서 실패하고 미끄러져 날짜와 시간을 적어놓고 저장해 밀어둔다.

기회가 닿는 대로 광장의 말들을 모은다. 들입다 모아둔다. 내 속에 여전히 있는 도벽증을 때론 숨기고, 때론 농담으로 위장하거나 진담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말들을 훔치고 저장한다. 그것은 내 원동력이자 나만의 방식과 윤리와 관점으로 작업을 계속하게 하는 질기고 음흉한 욕망이다. 

휴대폰은 저장 용량이 꽉 찼다며 계속 경고를 해댄다. 노트북에 저장된 광장과 홈리스판의 말들은 다른 사람들에겐 이해도 쓸모도 거의 불가능하다. 나만 중요하다고 여기며, 이것들을 잃게 되면 그땐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며, 이것들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한 사는 데까지는 살아볼 생각이다. 일단 휴대폰으로 녹음했다가 시간 날 때 녹취 앱에 넣어 한글자료로 만들어 노트북에 저장해놓고, 나중 언젠가 녹취록을 정리한다. 대체로 하위 문화층의 말들이다 보니 앱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도 많아, 녹취 원본도 엉망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가능하면 녹음 후 빠른 시간 안에 풀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은 늘 부족하고, 욕심은 절제할 수 없고, 그래서 녹취록 원본 자료는 무작무작 쌓여만 간다. 어떤 것은 필요에 의해 정리 발췌해 글에 써먹고, 많은 것은 전혀 손을 대지 못한 채 저장되어 있다. 녹음된 말들 이외에 화자의 표정과 몸짓, 주변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 당시 청자의 느낌이나 사회적 자료나 근거의 조각 등이 메모된 글들도 있지만, 어떤 자료들은 시간이 많이 지나 녹음 이외의 다른 것들은 다 잊어버린 것들도 많다. 어떤 녹취록 원본은 너무 길거나 나조차도 이해 안 되는 구절들이 많아, 손댈 작정을 못하고 있다. 그래도 “삭제”를 눌러 버리지 못하고 계속 저장해놓는다. 날 것 상태의 아카이브, 저급 아카이브, 나만 아는 아카이브이며, 내 도벽질과 저장강박과 수집증의 결과물이자 내 정신병적 증상의 증거물이다.

보편의 윤리와 규범과 법과 상식을 위반하지 않고는 광장 사람들의 말과 외연을 모으거나 그것으로 글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믿는 것은 “내 작업이 그/녀들을 배반하지는 않겠다”는 내 소신 뿐이다. “나랑 하나님만 안다”, “나는 하나님과 직통한다”고 우기는 심한 정신장애여성의 심정처럼 오만하고 위태롭고 독선적이다.

광장 사람들 특히 여성노숙인들 중에는 수집증이 흔하다. 짐이 점점 늘어난다. 캐리어 개수가 늘고, 쇼핑백과 비닐봉지가 늘고, 옷과 약봉지와 빈 병과 찢어진 가방과 속옷과 양말과 빗과 머리핀과 빵과 음료수와 비누와 샴푸가 쌓인다.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 일단 버리지 않는다. 노숙인들의 짐은 살림살이이자 자기 존재의 증거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쓰레기라고 부른다. 내 글 작업도 그녀들의 살림살이 같다. 함께 녹음된 다른 사람의 말을 버리지 못하고 남긴 녹취, 훔친 표정, 메모, 인용, 검색해 둔 단어, 뜻을 잊거나 몰라 찾아본 단어의 설명, 번호만 붙이고 내용은 없는 각주, 의문부호들...... 늙어 건망증이 심해지니 떠오른 단어는 일단 근처에 적어놓아야 한다. 적확한 단어를 끝내 찾지 못하면 의문부호와 함께 설명만 붙여 놓는다. 광장의 ‘미친’ 여자들을 쓰다 보면 여러 주인공들 사이를 메뚜기처럼 팔짝팔짝 뛰어다녀야 한다. 광장 여자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기도 하고 제각각이기도 하다. 개인별로 별도 한글 파일을 만들어 시작하지만, 하다 보면 한 사람에게 여러개의 파일이 만들어진다. 새벽은 오로지 혼자가 되는 시간이며, 이주와 탈주를 욕망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노트북을 열고 광장의 "미친 여자들"을 쫓아다니며 사이를 헤매고 두리번거리며 헷갈리다 지치며, 글을 뒤집었다 엎었다 한다. 낮이고 밤이고, 글 속이고 꿈 속이고. 미친년 널 뛰듯 혼자 바쁘지만, 언제나 도중(途中)이다. 글은 정돈되지 않고, 머릿속도 내 일상도 정리되지 않는다. 소위 “완성”이라는 걸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할 수 있는 한 한다는 생각이다. 7년째 보러만 가다 어느 날 급사를 하기엔 억울하고 아까워, 쓰는 데까지는 쓰다 중간 어디에서 죽으려는 거다. 

제자리에서 벗어나기
오드라데크를 떠올린다. 카프카가 말한 수수께끼 같은 존재. 시작과 형태, 거처와 향방, 용도와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 그냥 존재이자 흐트러짐. 광장의 여자들은 자주 오드라데크 같다. 정주하는 시민이나 노동자가 아니고, 떠나온 곳도 떠나갈 곳도 정해진 것이 없다. 연고와 목적을 알 수 없는 이방인. 질문하는 자의 의도를 우회하고 미끄러지면서, 사실과 쓸모의 의미를 비웃으며 굴러다닌다. 추방과 탈주와 사라짐을 통해 어디선가 오물의 공간을 점유하고 떠난다. 체제와 상식의 균열이자, 다른 질서의 실마리다.

대한민국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405. 서울역의 주소이자 광장의 주소다. 하지만 광장에 사는 노숙인들은 주소가 없다. 그들의 거처인 어느 기둥 옆, 어느 계단 아래, 어느 화장실 앞, 어느 엘리베이터 옆, 어느 에스컬레이터 뒤의 주소는 모두 한강대로 405인데, 그들에겐 주소가 없다. 국가가 주는 수급비를 받을 주소가 없어 수급자가 될 수 없고, 불구속 수사의 조건인 주소지가 없어 가벼운 혐의에도 일단 구속 수사 대상이다. 광장과 대합실에 머무는 한 한강대로 405를 점유하고, 405에서 쫓겨나고, 405 안에서 이동한다. 때론 405를 떠나지만 누구는 다시 405로 돌아온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405 사람들이 아니다. 땅에 그어진 금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들은 늘 경계에 있다. 

그/녀들을 좇아 나도 경계를 탐한다. 칼날, 경계, 장벽 위에 선다는 건 어느 한쪽으로 결정하지 않기다. 뒤퉁거리다 떨어지면 다시 기어올라 경계에 선다. 여기저기 세세히 뒤지다가 늘 사이로 돌아온다. 사이에서 보아야 파악이 가능하다. 여러 상황과 장소와 시간과 입장 들의 사이. 경계에 있다는 것은 어디로든 어디에서든 도착도 정착도 실패하는 일이다. 고정된 시간과 공간으로 편입하기를 거부하며, 길을 잃고 되는대로 헤매면서, 어쨌든 서로 연루되자는 거다. 친구든 배신자든, 동료든 연루자든, 공범이든 연고자든, 무엇이든 되겠다는 것이고, 아무것으로도 규정하거나 규정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무 이름으로나 부르고 불리우며, 꼴리고 매혹하다가, 파편으로 뒤섞이다 떨어져, 또 새 길을 나서는 것이다. “안”이 아닌 사이에 존재하면서, 머물지 않고 항상 자리를 바꾸며, 불안과 강박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해체하는 것. 뒤에 남는 소문과 추문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터전을 불태우고 떠나 돌아갈 곳 없이, 떨려난 곳에서 자신을 타자로 발견하는 것이다. 익숙한 곳을 떠나 방향감각을 잃는 혼돈이자 쾌락이다. 낙관도 비관도 없이, 떠났으니 어딘 가로 가고, 거기서도 짐을 풀지 않으며, 다음 떠남을 작정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되었다가 무엇이든 떨쳐내며 이탈하기.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각별하게 만들어진 ‘안성맞춤’한 그릇을 깨뜨리고, 무슨 용도로도 대충 쓸만한 가볍고 싸고 흔해서 잃어버려도 어디선가 주울 수 있는 그릇 하나로 냉담하고 척박한 일상을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다. 

어디서든 결국 결석을 선택하고, 부재하기 위해 자신을 잃어버리며 불안과 요동을 감수하기. 안주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이자 마지막까지 이어질 투쟁의 태도다. 자유는 피를 흘리며 찢겨져 나가는 일이다. 갖은 인연으로 붙은 호명에 불응하고 물려받기를 거부하면서 얻는 해방이다. 집과 짐이 없는 사람의 가뿐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관계와 소유의 끈을 끊는 과정이 필수다. 새는 자리를 소유하지 않는다. 자리를 소유하고 늘리며 점점 무거워질 것인가, 자유와 저항을 향해 자리를 떠날 것인가. 진정한 장소는 자리가 아니라 존재의 태도다.

광장의 여자들은 도착하지 않는다. 도착할 집이 없거나, 도착한 집에서 쫓겨났거나, 집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게 되었거나, 집보다 광장이 나았거나, 집이 감옥이었거나, 감옥과 거리가 집보다 나았다. 나는 그들과 함께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 글을 쓰고자 한다. 결말이 있는 글이 아니라 도중을 지나가는 글을 쓰고, 사라져가는 존재들을 글로 좇아가며 사라지기를 선택한다. 내 마지막 역시 실패와 사라짐과 도중에 중단될 것임을 안다. 글쓰기도, 활동도, 관계도, 몸도 어느 날 도중에 끊길 것이다. 그러니 그냥 쓰는 중이다. 

죽음 근처에서
죽음에 관해 슬프고 어쩌고 하는 뻔한 묘사들은 얼마나 게으른가. 죽음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규정하는 생명지상주의가 문자 그대로 징그럽다. 죽음에 관한 통념은 세뇌라 할 만큼 특정 방향으로 이데올로기화되어 있다. 생산성과 정상성, 가족주의와 국가의 인구 관리, 죽음 직전까지 불안을 팔아먹다 죽기도 전에 천당을 팔아먹는 종교, 죽음은 실패라며 숨이 끝나는 순간까지 빨대를 꽂고 돈을 빨아대는 의료. 

광장 사람들에게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그들의 죽음은 대부분 행정이다. 신원 확인, 보고서, 연고자 확인, 사체 인계. 무연고 사망, 공영장례. 나는 그/녀들이 살거나 죽은 광장의 곳곳을 기억한다. 우체국 지하도 계단 맨 위, 서부역 인근 주차장, 중앙지하도 연세빌딩 구간, 다시서기센터 인근 텐트, 대합실 근처 국기게양대 앞...... 그 자리들에는 다른 노숙인들이 살고 있다. 내게 생애 기록은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을 미리 애도하는 일이다. 죽음 후에도 기록 이외의 애도 방법이 내겐 없다. 노숙인을 넘어 모든 사람에 대해 그렇다. 내가 좇아가고 기록한 죽음은 대부분 죽음에 이르렀음을 축하할 만한 삶들이었다. 어떤 죽음은 다른 죽음을 기억나게 하거나 미리 예감하게 한다. 기시감과 미시감 사이에서 시간만 되면 그들의 장례에 참여한다. 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가는 산 사람들과 소풍을 다녀오기 위해서. 내게 기록은 애도이자 복수다.

신자유주의적 ‘쓸모없음’이야말로 반자본적 존재 방식이다. ‘쓸모없음’ 혹은 반자본적 삶이란 낭만적이거나 영웅적인 삶이 아니라, 배고프고, 춥고, 냄새나고, 돈 없고, 서럽고, 모욕적이고, 자주 ‘비참’하고 우울해지는 것이다. ‘쓸모없는’ 존재들과 함께 대항적 삶을 산다는 것은, ‘비참’과 우울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맛이 아닌 ‘쓸모없음’의 맛을 알아내고 느끼고 살아내며 확장하는 과정이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쓸모없음’의 맛과 삶이 순탄하고, 따스하고, 달콤하고, 멋있고, 타당하고, 일관적이고, 합리적일 리 없다. 감동, 감사, 존경의 기미가 있는 무엇이나 누구라면, 이미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노숙인 당사자들에겐 외람되고 혹 오독될 수 있는 표현이지만, 아직 쓸모 있는 우리들에 앞서 그 ‘쓸모없음’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노숙인들이다. 그러니 더 저항적 삶을 사는 방법 중 하나는, 노숙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노숙인들에게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놀든 싸우든, 웃든 울든, ‘징그럽든‘ 헷갈리든, 자기 밑바닥을 보든 인간 보편의 밑바닥을 보든, 어쨌든 하는 데까지 뒤엉키고 휘말려가며 추락과 퇴행의 도중을 살아가는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희망과 미래 따위는 꼬박꼬박 거역하며, 실패를 통해 자유를 사는 자들만 아는 거역의 맛으로 마저 살다 죽는 거다. 쉽지는 않은 삶이니 일찍 죽으면 땡큐다. 

그러니 “너도 노숙을 해봐! 아주 재밌을 거야!”라던 한 여성 노숙인의 말은 초대이자 충고이고 유혹이다. 하지만 글을 쓰려면 혼자 있을 방과 노트북이 필수다. 광장 근처에 방을 얻어 광장을 들락거리며 글을 쓰고 산다. 도망갈 곳이 있는 사람은 온전한 투기(投企)가 불가능하다. 나의 한계이자 위치다. 몇 년 전 노숙인들을 보며 “먼저 추락한 사람들 덕에, 더 추락해도 살아지겠구나 싶다” 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더 추락해서 도달할 수 있는 노숙의 자리야말로 ‘살아지는 것’을 넘어 다른 경지의 삶을 시작하는 자리라는 생각이다. 힘들겠지만, 힘들기 때문에 더욱 내 바닥이 파헤쳐지고 더 낮은 자리에서 더 진한 맛으로 살 수 있겠다 싶다. 알지만 엄두를 못 내고, 7년째 광장을 들락거리기만 하고 있다. “제자리”에서는 전환과 각성이 불가능하다. 탈주와 추락, 자신을 죽이고 자신을 떠나 삶을 뒤엎기, 자발적 퇴행. 이를 통해 나에서 시작해 제도와 풍습과 관행에 틈새와 균열과 요동을 만들어내는 실천. 모두가 장차의 성공을 향해 내달리는 경쟁사회에서 자발적 퇴행은 그 자체가 체제에 대한 저항이자 전환이며, 성공을 쫓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나도 모를 다른 맛과 쾌락, 다른 존재 방식과 세상이 있다. 그럼에도 칠십 나이를 핑계 삼아 더 이상 추락하기 싫다며, 방에서 쓰다 죽고 싶다며, 내 발목을 스스로 붙잡아두고 있다. 아직은 여기다. 어쩔 수 없이 추락당하고 방에서 떨려난다면, 만성적 추방 상태의 쓴맛과 위태로움과 자유를 가까스로, 바람이라면 부디 기꺼이, 살아보리라. 불온함이란 제자리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자리로 떠나고자 하는 욕망이자 갈망이다. 다른 자리를 확신해서가 아니라 “떠나기 위해” 자기 등을 밀고 가는 거다.  ‘아버지 덕’에 일찌감치 맛 들인 불온함으로 시장 바닥의 ‘미친년’들을 쫓아가던 여자아이가, 늙어 광장의 ‘미친’ 여자들을 쫓아 어디까지 제 등을 밀며 나아갈지 두고 보겠다. 

남은 삶에 대한 다짐으로 이 글을 쓴다.  

















최현숙 Choi Hyunsook


광장의 “미친” 여자들 (4): 광장과 방 사이에서

‹광장의 “미친” 여자들› 마지막 글은, 스스로를 오랫동안 “미친년”이라 불러온 최현숙이 광장의 여/자 홈리스들을 따라가며 자신의 삶과 광기의 기원을 되짚는 기록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과 규율에 맞서며 자란 최현숙은 자신 안의 거역과 광기, 도벽과 중독, 추락에 대한 욕망과 꼴림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여성 홈리스들의 삶을 통해, 사회가 “미쳤다”고 이름붙인 여/자들의 서사를 자신의 이야기와 겹쳐 읽어낸다. 집과 가족, 정상성과 생산성의 질서에서 밀려난 여/자들. 노숙과 시설, 병원과 감옥, 거리와 광장을 떠도는 그들의 삶은 최현숙에게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아닌, 사회가 감추고 싶어 하는 균열과 저항의 흔적이다.

최현숙은 광장을 기록하는 일 또한 일종의 도벽이라고 고백한다. 광장의 말과 표정, 냄새와 몸짓을 글로 훔쳐 모으며 “미친년”들의 삶을 기록한다. 동시에 자신의 삶과 광기, 불온함의 기원을 되짚는 이 글은 최현숙이 평생 거역해 온 질서와 끝까지 화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최현숙은 말한다.

“불온함이란 제자리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자리로 떠나고자 하는 욕망이자 갈망이다. 다른 자리를 확신해서가 아니라 ‘떠나기 위해’ 자기 등을 밀고 가는 거다.”

일시: 2026. 6. 15.
장소: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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