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계절을 두 번 쓰기 (1)
연혜원
연혜원
1.
얼마나 사랑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난 내 애인의 조울증에 대해서 한마디도 말할 수 없다. 내가 겪은 심지의 양극성정동장애, 그중에서도 1형 조증 삽화는 우리가 나눈 사랑과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질환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기 어려워하는 까닭은 병과 삶과 감정과 관계를 명확히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만 강이지, 앵강은 전혀 강처럼 보이지 않았다. 앵강은 누가 봐도 바다다. 8월의 마지막 주의 남해는 여전히 여름의 한가운데였다. 심지와 나는 아침 일찍 사천에서 에어컨이 없는 작은 트럭에 앉아 더운 바람을 쐬며 남해 앵강 근처 오두막으로 함께 왔다. 1시간쯤 달려온 것 같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바람은 시원하지 않았다. 사천에서 앵강으로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어딜 가나 바다였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란 나는 남쪽 바다를 많이 보지 못했다. 두어 번 여행한 것이 전부였다. 평생 볼 일 없었던 남해가 지척에 놓여 있었다. 남쪽의 바다는 유난히 화려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그래서 화려한 구석이 있는 걸까? 내가 살면서 만난 남쪽 사람들은 다들 성격이 화려한 구석이 있었다. 화통하다고 해야 하나? 호탕하다고 해야 하나? 낙천적인 면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겨울보다는 여름을 닮은 사람들이다. 심지도 그런 사람이다.
심지를 왜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심지가 용감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심지는 즉흥적이지만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수줍어하지만, 뒤로 빼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심지랑 사귀기 2주 전부터 심지는 내가 부르면 언제나 나에게 달려와 줬다. 아침 9시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 서울대입구역에서 새절역까지 밤 9시에 달려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심지가 밤늦게 나에게 달려와 줘서 심지를 좋아하게 된 건 아니다. 나는 무엇보다 심지의 글을 참 좋아했는데, 심지의 글은 일단 쉽게 잘 읽혔고, 글 쓰는 사람을 잘나게 포장하는 구석이 없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쓰면서 자기애가 느껴지지 않는 글이었다. 그리고 왠지 그 글이 날 위해 쓴 글 같아서 가장 재밌었다. 분명히 사랑에 빠진 사람의 글이었다. 나는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닌데, 살면서 읽어 본 몇 권 안 되는 남아메리카 소설을 정말 좋아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심지의 글은 남아메리카 소설 같은 매력이 있었던 것 같다. 구애하는 글을 잘 썼던 거지.
우리는 사귄 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붙어 있었다. 레즈비언 같은 연애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이런 연애를 처음 해 봤다. 그러니까 레즈비언 같지 않은 연애를 하는 레즈비언이었던 거다. 내가 이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애인과 붙어 있는 사람이 될 줄 35년 동안 몰랐다. 우리는 하루도 떨어져 있지 못했고, 집이 두 개인 게 낭비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 방에 붙어 있었다. 심지의 집이 나의 집보다 넓었는데도 굳이 우리는 우리 집에 매일 붙어 지냈다.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살아서 집을 비울 수 없었다.) 그러다 레즈비언의 수순처럼 일주일만에 같이 살 결심을 했다. 다른 레즈비언들도 이만큼 열정적으로 사랑한다는 뜻이겠지? 이쯤 되니 같이 살지 않는 연인들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편협해져 있었다.
우리는 잠을 아껴 가며 연애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잠을 아꼈던 건 나뿐인가 싶기도 하다. 어느 순간부터 심지는 점점 잠을 자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9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 일하는 직장인이 저렇게 잠을 적게 자는 것이 신기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시기에 심지가 출근하면 심지가 퇴근하기 전까지 수면 부족으로 두통에 시달렸고, 온종일 비몽사몽한 채로 하루를 보내기에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잠을 안 잘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시기에 나한테는 정말 심지밖에 없었다. 심지를 제외하면 무엇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심지는 나보다 체력이 훨씬 좋은 건지 가끔 의아했다.
심지의 망상에 대해 처음 들은 건 심지의 집에서였다. 그날은 심지에 집에서 함께 잔 날이었다. 그날도 이미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심지는 자신이 믿는 어떤 세계에 관하여 들려주었다.
심지는 종종 자신이 어떤 쇼 안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해 주었다. 그 쇼는 말하자면 영화 <트루먼 쇼> 같은 것이었다. 심지는 사실 자신은 쇼 안에 갇혀 있고,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상대로 연기 중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이 쇼 밖으로 너무 나가고 싶지만, 영원히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심지는 절실히 이 쇼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주었다. 새벽이었고, 나는 너무 잠이 오는 까닭에 슬슬 두통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심지가 털어놓은 이야기가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이 시간에 듣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였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는 이야기였다. 언젠가 심지에게 조울증이 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트루먼 쇼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듣기에 나는 너무 피곤하고 졸렸다.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일단 자고 일어나서 다시 생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갑자기 들은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
사랑에 빠진 레즈비언은 조증 삽화가 온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다. 갑자기 모든 것이 수월하게 느껴지고, 감정의 진폭이 극단적으로 커지며, 잠이 잘 오지 않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삶이 걸린 결정을 순식간에 내리고 실천해버린다. 나는 많은 레즈비언들이 그러하다고만 들었지, 내 이야기가 된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이전의 애인들과도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열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쉬지 않고 매일 함께 있고, 일주일 만에 같이 살 결심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평생 혼자 살 거라고 다짐했던 나에게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친구들은 이렇게 순식간에 변한 나를 신기해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심지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상하다면 함께 이상해진 것이겠지 생각했다. 심지의 트루먼 쇼 망상에 관해 들었을 때도 정말 마음이 아팠지만, 일상과 병행할 수 있는 정도의 망상이라고 생각했다. 심지가 그러한 망상을 겪는다고 해서 심지를 떠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그러한 망상 속에서도 나를 사랑한다면, 함께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정신병자인걸.
나는 유치원에 가기 훨씬 전부터 지독한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일화만 해도 수없이 많다. 온갖 강박을 거쳐 성장했다. 피가 날 때까지 몸의 온갖 부위를 가만히 두지 않기, 하루에 일곱 번씩 목욕하기, 원하는 모양대로 잘릴 때까지 공책의 한 귀퉁이를 자르기(다른 사람들 눈에는 모두 같은 조각으로 보일 뿐이었다.), 구매한 필통에서 나만 알아볼 수 있는 흠결을 발견해 가게에서 몰래 바꿔서 나오려다가 도둑으로 몰리기, 원하는 글씨로 써질 때까지 공책을 찢기, 끝도 없이 이동하는 강박들… 강박에 완전히 잡아먹히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이 언제나 나의 일상일대의 과제였다. 매일 나는 나 자신과 대화했다. ‘앞으로 스무 번만 더 생각하고 끝내기야. 스무 번이 끝이야.’ 그렇게 스무 번이 서른 번이 되고 마흔 번이 될 때까지 스스로 타이르고, 설득하며 강박과 싸웠다. 그럴수록 늘어가는 것은 마스킹이었다. 자랄수록 늘어가는 것은 강박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강박증을 앓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법이었다. 나는 강박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나보다 수월하게 살까 궁금했다.
내가 처음 정신의학과에 찾아간 것은 2019년이었다. 분화구가 터진 건 끔찍한 연애와 가족에게 한 커밍아웃의 실패 때문이었다. 상대방이 우리의 관계가 연애임을 부정하는 연애를 2년을 겪고, 그 와중에 커밍아웃으로 가족과 갈등을 겪으며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허구한 날 길을 걷다가도 힘이 빠져 풀썩풀썩 쓰러지고, 아침마다 공황으로 심장이 너무 뛰어서 일어나지 못하는 시간을 일 년이나 겪은 끝에 내 발로 정신과에 찾아갔다. 갈등 중이었던 부모님까지 대동해서. 당신 딸이 이렇게 지금 엉망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함께 책임지시죠.
그때 우울증을 진단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으니까, 약과 함께 산 지는 6년이 되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이제는 약을 먹지 않는 삶은 상상할 수 없으니, 이제는 정기적으로 정신과에 가는 일과, 약을 먹는 일이 일상이 된 셈이다. 누군가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비참함을 느낀다고도 하는데, 나는 공황에 시달렸던 시간이 너무 끔찍해서 이제는 매일 약 한 번 먹는 걸로 일상이 유지되는 데 감사함을 느끼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보다 내게 어려운 것은 약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강박과 ADHD이다. ADHD라는 진단명은 나에게 정말 애증의 대상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ADHD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까닭에 사실은 ADHD라는 것에 완전히 질려 버렸다. 내가 ADHD일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된 것 또한 아동기 경험에 기인한다. 나는 유난히 사회성이 없는 아동이었다. 유치원을 다니는 내내 나는 또래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무리에 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로 고통받았다. 내가 강박증이랑 싸운 만큼, 사람들의 사회적인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세월이 길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들 간 관계를 관찰하고, 해석하고, 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따라해보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이 되었다. 내가 사회학 대학원에 진학해서, 사회학에서 흔히 ‘질적방법론’이라 불리는, 인터뷰를 통해 사람을 연구하는 연구 방법을 선택한 이유도 그러한 나의 습을 전문적인 연구로 발전시켜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ADHD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면, 어린 시절의 나의 ADHD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사회성 부족으로 시작되었고, 점점 좋아하는 것에 한정된 고도의 집중력과 이에 수반되는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지나친 무관심이 한국에서 돈을 벌고 사는 데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 아는가? 놀랍게도 대부분의 돈벌이는 내가 관심 없는 곳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열심히 해 보려고 노력했던 시절도 있지만, 대부분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으로 갈무리되었다. 타인을 위해서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에는 함께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배운 세월이었다.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통 돈이 되지 않는 것만 좋아한다는 것은 정말 비극적인 일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해도 생활비를 마련할 수 없었으니까.
많은 친구로부터 내가 ADHD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서 제대로 된 ADHD 검사를 받아보았다. 검사 결과는 ADHD로 의심되지만, 의사의 소견도 필요하다는 결과였다. 담당 의사는 내가 ADHD 환자치고는 주어진 일에 대한 수행에 문제를 겪지 않고 있고, 지금 먹는 우울증 약이 잘 맞는다는 것을 근거로 지금 먹는 약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ADHD 약을 굳이 권하지 않았다. ADHD 약을 먹더라도 결국 행동치료는 본인의 몫인데, 검사 결과가 애매할 뿐더러 지금 나는 행동치료가 필요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우울증 치료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의사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돈을 벌어다 주지 않는 상황까지 고쳐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래서 이어지는 빈곤이 나의 우울증과 우울증을 야기하는 불안에 무척이나 치명적이라는 사실이었지만.
언젠가부터는 난 내가 돈만 잘 벌었어도 벌써 우울증이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약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는 상황이 복잡했다. 그럼에도 나는 약에게 고마워했다. 더 이상 공황을 겪지 않게 해 주어서, 나의 가난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해 주어서, 조금 더 현명하게 주변에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어서 고맙다고 생각했다.
내가 늦은 정체화에도 퀴어 친구들과 쉽게 친해지고, 퀴어 커뮤니티에 녹아들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정신병 덕분이었다. 우울증과 공황, 강박, 집착,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극단적인 차이, 사회부적응 등등, 동성에 대한 열정보다는 주로 정신질환 이야기를 하면서 퀴어 친구들을 쉽게 사귀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정신병 있는 사람을 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정신병이 없는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의 특징
지각을 자주한다.
자주 멍을 때린다.
눈치가 없다.
사회성이 부족하다.
거짓말을 못한다.
tmi를 남발한다.
굳이 안 해도 되는 걸 한다.
꼭 해야 하는 걸 못한다.
돈 안 주는 일을 자꾸 한다.
돈 주는 일을 잘 못한다.
나도 그렇다.
어쩌면 애인과 나의 정신병에 대해서 굳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지면에 쓰겠다고 결심한 것부터 정신병 있는 사람이 할 법한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글쓰기. 오로지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글쓰기. 얼마나 무책임하게 글을 쓸 수 있는지 실험해 보는 야노적 글쓰기.
나는 타인에 대해 글을 쓰는 행위에서 쓰는 사람과 쓰여지는 사람은 어떤 합의를 거친다고 해도 평등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글쓰기는 그 글의 영향력과 그 글이 초래할 미래를 예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언제나 일면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글은 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서 쓰여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공익적인 글이라고 한다고 해도 나는 쓰지 않으면 못 참겠다는 욕망을 완전히 지운 당위를 내세우는 것은 언제나 조금 뻔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
사귀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우리는 제주로 휴가를 다녀왔다. 심지가 잦은 가려움을 호소한 것은 그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심지는 자꾸 온몸이 가렵다고 했다. 심지어 심지는 입 안도 가렵다고 했다. 나는 고양이 알러지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리가 사귄 이후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의 집에서 보내고 있었는데, 심지는 고양이와 함께 지내보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고양이랑 같이 살지만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사람으로서, 나에게 고양이 알러지는 가려움으로 발현되기 때문에, 당연히 심지도 고양이 알러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알러지 약을 먹이면서, 빨리 정확한 알러지 검사를 받아보자고 재촉했다. 그런데 왜인걸. 심지의 알러지 검사에는 그 어떤 알러지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알러지 약을 먹는 것은 중단되었다.
걱정하는 내 앞에서 심지는 나를 만나 묵은 때가 벗겨지면서 생기는 가려움인 것 같다고 말했다. 피부가 더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심지는 그때부터 종종 자신의 피부를 관찰하곤 했다. 가렵지만, 기분 나쁜 가려움은 아니라고 했다. 새로 태어나는 듯한 기분 좋은 가려움이라고. 영적인 것에 큰 관심이 없는 나는, 사귄 지 오래되지 않은 새 연인이 자신의 가려움에 대해 문학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두고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라면 내 성격상 온갖 병원을 들쑤시고 다녔을 테지만, 내 몸이 아닌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게 느껴졌다.
문제는 입안의 가려움에서부터 시작했다. 심지는 어느 순간부터 시도때도 없이 입김을 재차 강하게 불어대기 시작했다. 길 한복판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심지는 계속 크게 후-후- 입김을 불어댔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도 전혀 조심스러움 없이 크게 입김을 불어대는 것을 보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심지는 크게 후-후- 입김을 불어댔다. 이유를 물을 때마다 심지는 입안이 너무 가렵다고. 그래서 입김을 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때쯤부터 심지는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기 시작했다. 어떤 자리에 가도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듯했다. 행사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아 과시하듯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자꾸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심지는 점점 더 잠을 자지 않기 시작했다.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핸드폰을 보고, 노래를 들었다. 이렇게 사람이 자지 않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밤에 잠을 자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심지 옆에 있다가는 내 체력이 모두 동강 날 것 같은 위기의식에 사로잡혔다.
심지의 눈은 점점 더 초점을 잃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심지의 눈은 그저 나른해 보이기만 했다. 잠을 너무 못 자서 그런 걸까? 심지는 반쯤 감긴 눈으로 회사에 갔다 오고, 반쯤 감긴 눈으로 내 곁에 있었다. 계속 입김을 불고, 잠을 자지 않고, 지나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끊임없이 노래를 재생하면서. 심지는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애정을 표현했고, 애정 표현의 강도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심지가 이렇게 알 수 없이 변해가는 것이 그저 지나치게 사랑에 빠져서 그런 것인지, 분명히 내가 모르는 일이 심지에게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울 즈음, 심지가 돌연 자백을 했다. 사실 단약하고 있다고.
2.
두 사람 다 정신병이 있다고 해도 함께 정신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신병자들도 다 정신병에 편견을 가지고 있고, 정신병자들도 그것을 잘 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나의 정신병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친밀한 사람에게 나의 약점을 공개하는 일이며, 이 약점이 친밀한 사이에서 언제든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을 잘 알기에, 상대방에 자신의 정신병에 대해 들려줬다 하더라도, 그 정신병에 대해 내가 평가하고 추측하고 조언하고 제안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혹시 그 정신병으로 이 사람을 속단하거나 평가하고 교정하려 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검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정신병은 서로 다르기에, 심지어 병명이 같더라도 개개인마다 정신병의 역사와 특징은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나 또한 심지가 자신이 조울증 환자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때, 일부러 많은 것을 물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사귄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서, 조울증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심지가 말하고 싶은 만큼만, 앞으로 내게 조울증에 대해서 들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섣불리 조울증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는 것이 심지를 압박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심지가 단약 중이라는 말을 했을 때, 심지의 조울증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단약은 모든 정신병 환자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이슈이기 때문에 애써 덤덤하게 반응하고 싶었다. 심지는 본인이 단약 중이라는 고백을 하면서 나에게 미안해했다. 나는 미안할 게 뭐가 있냐고, 필요할 때 다시 먹으면 되지, 정도로 덤덤하게 말했다. 실제로 나도 단약을 자주 해봤고, 단약한 지 3주 정도가 흐르면 강하게 우울증 신호가 다시 오면서, 다시 약을 먹으면 느려도 2주 안에 일상을 찾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지의 조울증에서 단약은 그 정도로 간편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날 새벽 바로 알게 되었다.
심지는 그날도 잠이 오지 않는다면서 본인은 혼자 노래를 듣겠다고 했다. 나는 너무 졸렸고, 그럼 혼자 잠들겠다고 말했다. 내가 갑자기 잠에서 깬 것은 새벽의 한중간이었다. 갑자기 심지가 방을 뛰쳐나가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나 좀 도와달라고, 날 좀 꺼내달라고 울부짖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심지를 따라 방 밖으로 달려나갔다. 한여름의 새벽 공기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심지였다. 심지는 나를 보자마다 급히 전화를 껐고, 나를 붙잡고, 사실은 이 세계에서 나가고 싶다고, 나 때문에 이 세계에 남아 있고 싶었지만, 사실은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고, 그 말을 나에게 못해서 너무 힘들었다고 울부짖었다. 그 순간 심지가 몇 주 전에 들려준 심지의 트루먼 쇼 망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당장 심지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한마디뿐이었다. “넌 이미 바깥이야.”
*
울부짖는 심지를 데리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던 그 순간 나를 사로잡은 공포를 잊을 수 없다. 이 좁은 집에는 나와 심지, 그리고 고양이 하쿠, 셋뿐이었으며, 나는 심지의 병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고, 이 집에는 심지의 약도 없었다. 심지는 완전히 자신의 망상에 사로잡혀 공포에 떨고 있을 뿐이었다. 잠을 못 자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나는 심지에게 약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고, 심지는 자신의 집에 약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아침이 되면 빠르게 심지의 집으로 가자고 말했다. 가서 약을 먹자. 빨리 약을 먹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말고 떠오르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는 내가 잠들어 있었던 새벽에 심지가 저질러 놓은 일들이었다. 심지가 조금 진정되고, 울음이 멈추자 갑자기 심지는 나에게 사실은 새벽에 사고를 쳤다고 고백했다. 사고…?
*
쓰는 사람, 심지. 삽화가 시작되자 심지는 무서울 정도로 끊임없이 썼다. 조증을 지나고 있는 심지는 쓰는 일에 몸과 마음이 완전히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 그런 심지의 쓰기가 여타의 작가들과 차이가 있었다면 모든 검열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심지는 SNS에 쓰는 것을 멈추지 못했는데, 심지는 자신의 고통과 분노를 담은 규탄과 일갈의 글로 자신의 SNS를 도배했다. 심지는 하고 싶은 말을 SNS에 쓰는 것을 도저히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삽화 기간 내내 심지의 SNS에서 심지는 신이 되었다가, 영웅이 되었다가, 구원자가 되기도 하는 세계의 주인이었다. 심지의 SNS에서 이렇게 고통스러운 자신을 트루먼쇼에서 꺼내주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세상 사람들은 모두 씨발 놈이 되고, 심지는 결국 이 고난 속에서 자신이 신이었음을 깨닫기에 이른다. 결국 세상을 구원해야 할 임무를 가지고 태어났음으로 깨달은 심지는 그제야 자신의 고통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주어진 것임을 알아차리고 비탄에 빠진다. 세상의 주인 심지는 아무도 모르는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일갈할 자격이 있다. 그런 심지는 심지가 SNS에서 팔로우하는 선생님들을 태그하여 직언을 하기에 이르고, 예수가 골고타 언덕을 넘으며 자신의 삶을 스쳐 지나간 모든 이들에게 인사했듯, 심지의 삶을 스쳐 지나가며 심지에게 고난을 줄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과거의 인연들에게 안부를 묻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절반은 욕이었다.) 그날 나에게 고백한 사고는 이 모든 대서사시의 초입에 불과했다. 새벽의 페이스북에 심지의 직장 동료 일부와, 일부의 ‘선생님’들을 태그하여 나에게 사랑 고백하기…. 아주 귀여운 일침의 서막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또 다른 삽화의 특징이 있었다면 그것은 자신이 살면서 사랑했던 모든 여자들에 대해 말하기였다. 심지의 삽화 기간 동안 심지의 옆에서 내가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심지가 방을 뛰쳐나간 날, 침대로 돌아와서 심지는 페이스북에 사고친 것을 고백하는 것과 동시에 자꾸 본인이 좋아했던 다른 여자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에 사고를 친 것보다 더 충격적인 말이었는지, 어제까지 나밖에 모르는 것 같았던 사람이 자꾸 좋아했던 사람이 생각난다고 하는데 조증이고 뭐고 분노와 당혹스러움이 치솟았다. 그쯤 되자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정신병자답게 나의 우울증과 불안증을 병기 삼아 심지 앞에서 꺼이꺼이 울고 심장을 두드리며 네가 날 공황오게 한다며 정신병을 정신병으로 공격하기 전략을 쓸 수밖에 없었다. 너만 정신병 있냐. 나도 정신병 있다… 그렇게 심지에게 충격을 고스란히 되갚아주자 둘 다 조금 진정이 되었다. 한바탕의 소란이 벌어지고 난 일요일 아침, 우리는 좁은 방에 걸맞지 않은 퀸 사이즈 침대에서 천 권이 넘는 책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인 고양이 한 명이 정신병자 레즈비언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약, 약을 먹어야 한다. 우리를 살릴 길은 약밖에 없다.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기 시작할 거야…!” 그래도 심지의 집에 약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라고 느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심지의 조울증을 나의 우울증과 비슷한 회복 속도를 가진 질환이라고 생각할 줄밖에 몰랐기 때문에 그나마 가질 수 있었던 희망이었다. 심지를 택시에 태우고 은평구에서 관악구로 달려가는 사이에도 심지는 방금 떠올린 아주 중요하고 성급한 결정들을 들려주었다. 심지와 연인으로서 존중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것과, 심지의 결정이 실천으로 곧장 이어지지 않게 심지가 결단을 유예하고 반려하도록 설득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동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됐다. 조증 삽화가 시작된 사람과 대화 나누는 것은 어떤 선택까지를 존중해 주어야 하고 어떤 선택은 강제적으로라도 말려야 하는지 실시간으로 판단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심지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행히 심지는 약을 찾아서 바로 복용했다. 약을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심지는 금세 긴 각성을 끝내고 전원이 나간 것처럼 잠에 빠졌다. 나도 그제야 긴장이 풀려 심지 곁에서 잠이 들었다. 밤새 나를 둘러싼 세계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3.
그로부터 이틀 후 월요일, 나는 한밤중에 심지 가족들의 차를 타고 심지와 함께 사천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날 오후에 결정된 일이었다. 그날 아침, 분명 내게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 출근 후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정하고 평범하게 나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던 심지의 행방을 묻는 심지 룸메이트의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다시금 지난 새벽, 울면서 방을 뛰쳐나가던 심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와 같은 공포를 느꼈다. 심지의 룸메이트는 심지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온 것 외에 자초지종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내게 걸려 온 모르는 번호 너머에 심지의 어머니가 있었다. 심지는 조증 삽화가 올 때마다 비슷한 패턴으로 심지의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와 평범하고 다정하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와중에, 심지는 가족들에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폭탄처럼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심지에게 절대 비밀로 하라는 말과 함께 곧 심지를 데려가기 위해 사천에서 서울로 올라가겠으니 심지를 집에 붙잡고 있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어머니와 가족들은 사천에 살고 있지만, 심지가 회복하는 동안 머물 곳이 남해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꼭 남해로 심지와 함께 내려와 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무엇을 안다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알겠다고 답했다. 그 와중에서 심지의 다정한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몇 주 전, 심지와 함께 제주로 휴가를 떠났었다. 심지는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에 의해 정신의학과 폐쇄병동에 강제로 입원한 적 있다고 말해 주었다. 심지는 계속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었다. 내 주변에 폐쇄병동에 입원했던 사람이 처음은 아니어서 화들짝 놀란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내가 중요하게 들은 것은 심지에게 그 기간이 전혀 회복하는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심지의 어머니가 지금 심지를 데리러 서울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심지에게 비밀로 해 달라고 했을 때 떠오른 것은 제주에서 들은 심지의 이야기였다. 심지와 내가 사귀기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그런 내가 벌써 어머니와 공모했다는 사실을 심지가 알게 된다면 심지는 분명히 나에게 거대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걱정됐다.
나는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심지의 룸메이트에게 이 상황을 알리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심지의 룸메이트 또한 조심스럽게 심지에게는 어머니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심지의 증상을 보았을 때, 지금 심지는 이미 조증 삽화가 심해졌고, 증상은 근시일 안에 차분해질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심지는 지금 가족들에게 가는 것이 필요한데, 심지는 이전에 비슷한 상황에서 어머니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도망쳤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심지가 알고 도망친다면 적절하게 치료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조언이었다. 나 또한 지금의 심지를 나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벌써 잘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심지에게 비밀로 하지 못했다. 심지에게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공포에 사로잡힌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차분한 목소리로 심지에게 전화했다. 심지가 나를 믿어 주기를. 우리가 아직 한 달하고도 조금밖에 안 만났지만, 그래도 온 힘을 다해 내가 어머니에게 심지를 맡기고 떠나지 않겠다는 것을 믿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심지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심지는 나를 믿고, 집으로 와 주었다.
*
남해로 함께 내려가는 내내 나는 심지가 나와 만나기로 결심하고 나서도 단약했다는 사실에 대해 엄청난 배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심지에게 정말 크게 화가 나 있었다. 나에게 미래를 약속하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을 전부 소개받으면서 어떻게 이런 결과를 초래할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앞으로도 심지를 믿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그 사실이 가장 슬펐다. 아니 우리가 사귄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다는 사실에 가장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아니,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 사람에게 온전히 내 미래를 다 갖다 바칠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가장 화가 났다. 더 미쳐버리겠는 지점은, 지금 이 사람한테 이 정황에 대해 따져 물어서 논리적인 답변을 듣거나, 차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그런 상황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지금과 같은 순간이 오자 내가 이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 인생 최고로 스스로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가장 어리석은 지점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의 모든 일정을 뒤로 하고 한밤중에 이 사람이랑 같이 기약 없이 남해로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천이 바다인 남해에 작은 블루베리 농장을 가진 오두막이 있다. 두 채로 이뤄진 오두막이다. 이 오두막의 주인인 이 선생님은 오래 전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 오두막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이 선생님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고 블루베리를 따서 팔고 큰 개를 매일 산책시킨다. 이 선생님의 오두막에는 내가 살면서 만난 개 중에 가장 큰 개가 살고 있다. 과장 없이 정말 곰 같은 개다. 개 이름은 알프. 검고 털이 수북한 개다. 알프는 이 선생님의 사랑 속에서 살고 있다. 여름의 알프는 작은 오두막 안에 들어와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낸다. 심지가 당분간 머물게 될 오두막에도 종종 더위를 피해 알프가 들어오곤 했다. 알프를 쫓아내는 심지는 마치 세 살쯤 되는 어린 사람 같아 웃음이 났다.
심지는 삽화 기간 내내 대부분 어린 사람 같기는 했다. 애교도 늘고, 땡깡은 더 늘었다. 무엇보다 늘어난 것은 식욕과 창작욕이다. SNS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핸드폰을 반납한 심지는 남해에 내려와서 쉬지 않고 공책에 연필로 글을 썼고, 글을 쓰지 않을 때는 계속 먹을 것을 찾아 헤맸다.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책상 위에 김 봉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새벽에 옆 오두막 부엌에서 몰래 김을 훔쳐와 밤새 먹었다고 했다. 삽화는 식욕도 늘게 하는 걸까? 아니면 다시 약을 먹기 시작한 탓일까? 심지의 멈추지 않는 식욕 때문에 가족들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했다. 그나마 남해의 외딴 오두막에서 몰래 먹을 만한 것은 김과 블루베리 정도뿐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심지의 일탈을 부추긴 것은 나의 카페인 중독이었다. 남해에 내려간 즉시, 나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서 아이스 커피를 사 마실 수 있는 카페를 찾는 데 혈안이 되었다. 심지는 심지고, 나는 매일 커피를 마시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금세 오두막에서 걸어갈 수 있는 카페를 찾아냈다. 매일 오전, 아침 식사 후 산책을 빙자하여 심지를 몰래 카페에 데려가는 것은 남해에 있는 내내 우리 둘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곳은 식사도 함께 파는 곳이어서, 나는 종종 심지에게 팥빙수나 파스타 같은 것을 사줬다. 약 기운에 반쯤 눈이 감겨 있는 심지를 대놓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중년 남성들을 한 대 쳐주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우리의 즐거움을 한순간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심지는 그 와중에 넘치는 사교성으로 카페 사장님과 안면을 트기에 이르렀다.
심지에게 남해 오두막은 유배지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삽화 기간 내내 자극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곳. 심지는 남해에 수없이 내려왔지만 카페에 걸어서 가 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여태 가까운 곳에 이렇게 큰 브런치 카페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나에게 오두막은 앵강이 한눈에 보이는 곳. 심지가 잠을 자지 않고 똑같은 노래를 계속 듣고 쉬지 않고 나에게 편지를 써 주는 곳. 내가 잠들면 심지가 몰래 김을 먹는 곳. 밤이면 방충망에 작은 개구리들이 붙어서 노래를 부르는 곳. 블루베리를 끊임없이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심지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울던 곳.
조증 삽화의 한가운데에 놓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그렇지 않은 쪽도 정신을 좀 놓는 편이 편하다. 심지는 삽화 기간 내내, 많은 시간 분노에 휩싸여 있었는데, 그만큼 나도 심지에게 짜증내고 화를 냈다. 남해에서 심지는 늘 다양한 것에 분노하면서도 나에게만은 다정했는데, 나는 심지에게 짜증날 때마다 짜증내고 화가 날 때마다 화를 냈다. 절대 심지를 봐 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심지가 참 많이도 울었다.
우리는 남해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서로를 인터뷰하는 영상을 찍으며 놀곤 했다. 그게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내가 없었던 심지의 삽화 기간을 함께 기억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함께하는 심지의 이번 삽화만큼은 트라우마가 아니라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심지가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면서도, 삽화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심지가 끔찍하게 귀여웠다는 사실은 여전히 부정할 수가 없다. 그건 영원히 나만 아는 심지의 사랑스러움일 것이다.
9월이 되어도 남해는 뜨거웠다. 심지의 삽화만큼 좀처럼 끝나지 않는 여름이었다.
*
남해에 내려갔다가 처음으로 잠시 서울로 올라가던 길. 나는 심지가 지금 조증 삽화로 갑자기 남해에 내려가게 되었다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무엇도 이유가 아니고, 본인이 단약해서 이 모든 악몽이 시작되었다고, 도대체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심지와 사귀기 시작했을 때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빛처럼 빠르게 소식을 알렸던 것과는 상반되게, 심지의 삽화는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달 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꿈처럼 행복했는데, 호들갑을 떨고 다닌 데 따른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아니면 기분 나쁜 반전 영화 속에 들어와 있거나. 이미 친구들에게 심지와 같이 살기로 했다고 말하고 다닌 참이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지금 이 마당에도 심지를 좋아하고 심지랑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과거 수차례 사회와 격리되어야 했던 삽화를 겪고도 다시 단약 해서 또다시 망상에 갇힌 사람을, 내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랑할 것이며 심지어 같이 살고 싶은 마음에 변함이 없다는 이야기를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말이 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남해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에게 일상적인 메시지가 오자마자 터져 나오는 울음과 함께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고속버스라는 것도 잊고 전화로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다가 결국 시끄럽다는 항의로 전화를 꺼야 했지만, 전화를 끊고도 서울 가는 내내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심지와 나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서울에 있는 내내 친구들과 나눈 대화는 나와 심지의 상황을 조금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를 심지의 구원자로 상상하지 않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심지는 연인인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심지 자신을 위해 회복해야 했다. 그건 분명히 다른 조력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의학에 대한 심지의 불신과, 반복되는 단약이 오직 나를 위해 고쳐진다면, 그것은 무척 감동적인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에 심지는 언제나 나를 벌주기 위해서 단약할 수도 있으며, 나는 앞으로 심지의 회복을 위해 심지와의 다른 갈등을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나는 그런 관계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의 질병과 상관없이 심지와 잘 싸우고 싶고, 차이를 가지고 싶고, 독립되고 싶고, 자율적이고 싶었다. 무엇보다 서로가 여전히 타인일 때 발생하는 설렘을 간직하고 싶다. 그러니 심지는 심지를 위한 회복을 고민해야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집요하게 서로가 서로의 목표가 될 것이고, 서로의 동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심지는 많은 부분에서 내 삶의 깊은 동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 친구의 말에서 큰 용기를 얻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수치스러운 일은 친구들에게 공유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아무도 네가 그 사람을 진짜 어떤 마음으로 사랑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어”
이만큼 글을 썼을 즈음,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우리가 함께 겪은 심지의 지난 삽화에 대해 충분히 작성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 글에서 심지는 이제 막 남해에 도착했고, 우리는 아직 삽화 초기를 함께하고 있을 뿐이다. 매번 글을 조금씩 마무리할 때마다 너무 숨이 차곤 했다. 글을 쓰면서도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숨이 찰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이 경험을 글로 쓰는 데 내게 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심지의 삽화는 8월 마지막 주에 정점을 찍고 지속되어, 10월 마지막 주의 열흘간의 입원을 끝으로 11월 첫째 주에서야 비로소 잦아들었다. 심지와 나는 11월 마지막 날 같은 집으로 이사해 지금 6개월째 함께 살고 있다. 놀랍게도 우리는 지금 평화롭다. 어느 정도냐면, 가끔 나랑 심지가 진짜 정신병자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건 우리가 정말 정신병자가 아니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정신병에 다시금 잠시, 노련해졌달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심지는 기억력의 천재였던 삽화 기간과 다르게 지난 삽화 때 벌어진 일뿐 아니라 모든 것을 금방 잊어버리고, 정말 잠이 많고, 나보다 훨씬 느긋하며, 잘 긴장하지도 않고, 감정기복이 크지 않은 사람이다. 요즘은 나의 우울증과 강박증, ADHD를 심지가 다스려 주고 있다고 느낄 정도다. 그럼에도 심지는 여전히 회복 중이다. 회복 초기에는 심지가 너무 잠을 많이 자는 까닭에 나를 또 분노하게 하였다. 그것이 회복의 일환이라는 것을 안 다음에서야 나는 심지의 잠에 관대해질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나도 잠이 많아졌다는 사실인데, 우리는 같이 있을 때 정말 많이 잔다. 그리고 만성적인 불안증을 가진 나는 또 이 사실을 불안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남해에서 서울로, 그리고 또 다른 폐쇄병동을 오간 사이의 시간을 글로 잘 적어 내려갈 수 있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는 우리에게 글 쓰는 시간보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서로를 돌보는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이 글은 여러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첫 번째는 나와 심지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책임이다. 나는 나에 대해서만 이야기함으로써도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나에 대해 쓰는 글은 언제나 일정 부분 나를 변호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나에 대한 타인의 일상적 해석은 언제나 어긋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는 심지의 삽화 기간을 함께 버티는 동안 수많은 거짓말을 하고, 책임을 놓았다.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무수한 거짓말들이 얼마나 나에 대한 평가를 깎아 먹었을지 모르는 일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이 글에는 나와 심지만 존재한다. 우리 둘만 변호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의 가장 유력한 잠재적 독자가 조울증 당사자 혹은 조울증 당사자의 연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쓰는 내내 질환에 대해 정확한 정보 전달의 책임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글은 의학적 글도, 사회과학적 글도 아니다. 그리고 나와 심지가 느낀 고통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는 글은 더더욱 아니다. 나와 심지는 이 글을 쓰는 내내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요즘 나는 내가 쓴 글이 타인을 실망시키더라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이 글은 여전히 나와 심지를 위한 글이지 독자를 위한 글은 아니라는 사실에 죄송하다.
그럼에도 이 글이 세상에 나와야 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이 지면을 위한 분량의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놀랍게도, 아직 잘 모르겠다.
연혜원 Hye-Won Yeon
같은 계절을 두 번 쓰기 (1)
「같은 계절을 두 번 쓰기」의 첫 번째 연재는 연혜원의 글로 시작한다. 글에서 연혜원은 자신의 애인 이심지와 함께 하나의 계절을 통과한다.
종종 자신이 ‹트루먼 쇼›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는 이심지는 말한다. “사실은 이 세계에서 나가고 싶다”고. 연혜원은 이렇게 대답한다. “넌 이미 바깥이야.” “그리고 나도 정신병자인걸.”
사랑과 증상이 뒤섞이는 계절. 꿈처럼 행복한 시간 속에서, 두려움과 분노, 돌봄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연혜원은 그 불명예의 시간들을 기록한다. ‘그 세계’에서, 이심지와 ‘함께 살기’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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