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미친” 여자들 (3)
올림머리와 삭발 (1)

올림머리

“뭘 봐?”
구태여 자신을 찾아내 눈길을 마주쳐오는 인간들에 대한 올림머리의 입장이다. 소리는 만들지 않는다. 눈꺼풀 살짝 올리고, 입술 눌러 닫고, 턱을 조금 당긴다. 가늘고 강한 시선으로 그 사람만 찌른다. 주변 사람들 모르게. 귀찮은 종자들을 향한 신경질용 얼굴이다.
작은 키. 작은 얼굴, 단아한 옷차림. 단정하게 여며 틀어 올린 머리에서는 차분한 빛이 난다. 표정을 펴고 화장과 한복을 보태면 결혼식장 신부 엄마로 손색이 없다. 옅은 자주색 캐리어와 오른쪽 어깨에 걸친 옅은 주황색 가방도 적당히 화사하다. 세로 80cm 정도의 캐리어. 바퀴가 없다면 그 몸으론 들기도 끌기도 힘들다. 의자에는 늘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는다. 허리가 굽으면 몸이 풀리고, 몸이 풀리면 표정이 풀리고, 표정이 풀리면 들킨다. 갈 곳이 있는 사람은 몸도 불안도 방향이 있다. 올림머리는 없다. 오래 앉아 있지 않기 위해 가끔 일어나 걷는다. 캐리어를 끌고 천천히 화장실 쪽으로, 매점 앞으로. 혹은 대합실을 한 바퀴 걷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층 대합실로. 걸을 일이 있는 사람처럼, 기다리는 사람처럼, 막차를 놓친 사람처럼, 머무르지 않는 사람처럼, 승객처럼. 그러면서 자신에게 오는 시선을 눈알만 움직여 주시한다. 몰래, 빠르게. 시선이 마주치는 짧은 사이에 상대의 눈빛과 표정으로 알아챈다. 들켰는지 패싱 됐는지. 사람들은 길게 보지 않는다. 알아채도 슬쩍 눈길을 돌린다. 눈이 마주치기까지 하면 못 본 척한다. “못 본 척”을 올림머리는 정확하게 알아챈다. 실패다. 기분은 더럽지만 알아챘다는 이유로 못 본 척까지 하는데, “뭘 봐?”라는 입장을 내세우기는 귀찮다. 허다한 일이고 지나쳐 가는 군중이다.

안전요원들이나 청소부들에게 올림머리는, 자신들이 다가가는 게 싫어서 알아서 처신하는 노숙자다. 서울역사(社) 측이 노숙인들의 대합실 출입금지를 결정하지 않는 한 그냥 놔둔다. 언젠가 저절로 사라질 사람이다. 다시 오면 아직 안 죽은 것이고, 안 오면 죽었거나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살아있어도 죽음 편에 배치된 존재들. 대합실이나 광장에서 죽으면 처리를 위한 간단한 근무가 있을 뿐이다. 

올림머리에게 가장 귀찮은 건 자기에게 다가오는 노란 조끼와 수녀복이다. 노란 조끼는 등에 ‘노숙인지원센터’라는 문구가 써 있다. 수녀복은 복장 자체가 완장이다. “수녀와 노숙자”라는 세트에서 사람들이 느낄 자애니 은혜 따위가 구역질 난다. 그들이 다가오며 내미는 두유나 양말 쪼가리를 낚아채 상판대기를 후려치고 싶다. 받는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주는 맛에 주는 인간들.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있는 노숙자들을 찾아내 머리에 손을 얹고 통성기도에 심지어 찬송가까지 불러대는 쌍년 쌍놈들도 있다. 그걸 받겠다고 머리를 대주고 있는 노숙자들 꼬라지라니. 

노숙인들 대부분은 올림머리의 단계를 거쳤다. 더러워지지 않으려 전전긍긍했다. 광장이나 길거리나 교회와 절 앞에서 무료급식과 후원물품 줄에 서는 데에 각자의 감정 소모와 시간이 걸렸다. 배가 곯아 줄을 서게 되었고, 쪽팔림도 차차 줄어들었다. 깔끔함을 위한 전전긍긍이 점점 귀찮아졌고, 더러움에도 익숙해지다 물이 귀찮아졌다. “노숙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물이다.”라는 문장이 통상적이진 않지만, 일부 노숙인들은 절감한다. 씻지 않기 위해 온갖 핑계를 댄다. 잠자리나 후원물품이 필요해 노숙인지원센터에 신분등록을 하면서 공적으로 노숙인이 된다. 올림머리는 등록과 줄 서기를 하지 않는다. 다른 노숙자들은 그런 그녀가 꼴사납지만, 그녀가 숨기고 있는 배고픔과 전전긍긍을 빤히 안다. 자신들을 비웃지 않는 한 놔둔다. 어디서 돈을 만들어 먹고 사는지 어디서 씻는지 대충 알만하다. 노숙자임을 수긍하지 않는 올림머리와 수긍해버린 노숙자, 차이의 시작점이다. 갈수록 차이는 커진다. 노숙자들은 생존을 위한 줄 서기가 일상과 삶의 목표가 되고, 올림머리는 줄 서지 않고 생존하는 것이 일정이자 삶의 목표가 된다. 노숙자들의 줄도 경쟁 대열이다. 늦으면 없다. 광장에 후원물품 일행이 도착하면 광장 사람들은 달리고 여기저기서 싸운다. 정기적 행차에는 도착도 하기 전에 긴 줄이 늘어선다. 후원자들은 긴 줄을 사진 찍어 후원금을 모은다.

그 줄 한편에 죽음으로 들어가는 줄이 있다. 모든 밀어내기에는 가장 끝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있다. 돈 세상의 경쟁 대열에서 가장 끝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고이는 곳이 노숙판이다. 노숙판 당사자들의 죽음을 보며 노숙자들은 “저게 나야!”라고 생각한다. 혹은 끝났음을 부러워한다. 덜 밀려난 사람들은 그 죽음 소식에 불안과 다행을 느끼며 밀어내기 싸움에 더 매진한다.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 

삭발은 다르다. 삭발은 일부러 올림머리를 찾지는 않지만 보게 되면 기어코 눈을 마주쳐온다. 다가오지는 않는다. 멀거나 가까운 자리에 서서 혹은 자리를 옮겨가면서까지, 눈길이 마주치기를 기다린다. 마주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눈길을 피할 수는 없다. 마주쳐도 가지 않는다. 다가오지도 말을 걸지도 않고 주시만 한다. 삭발이 기다리는 건 올림머리의 신경질이다. 신경질 묻은 눈매가 오면, 희미하고 정확하게 비웃어주고 사라진다. 둘만 아는 신경질과 비웃음. 같은 종류라는 확인질을 당하는 수밖에 없다. 덤비려면 덤비라며 마주쳐오는 년을 얼른 마주쳐줘서 보낸다. 누가 봐도 노숙자인 게 뻔한 년과 시비를 따져봤자다. 더 다가오지 않는 것으로 됐다. 

후덥지근한 어느 밤, 삭발 시선이 마주친 걸 알면서도 올림머리가 신경질을 만들지 못한다. 의자에 앉아 조느라 풀어진 눈길만 주다 말다 한다. 7m 정도 떨어져 있던 삭발이 순간 사라졌나 싶었는데, 어느새 캐리어를 발로 차고 지나간다. 손잡이를 쥐고 있었는데 꽈당 소리를 내며 나자빠질 정도로 발길질은 고의적이다. 올림머리는 삭발의 등에 대고 “잡범 주제에”를 웅얼거리다 삼키고, 삭발은 몸을 돌려 히죽거리며 “정신 차려!”를 뱉고 간다. 얼굴부터 화끈하더니 온몸이 후끈거린다. 삭발 말고 승객들 때문이다. 여지없이 들킨 거다. 눈빛과 수군거림, 앉은 채 좀 떨어지거나 자리 옮기기. 망신(亡身)의 시간을 통과하려면 무심(無心)해야 한다. 무표정으로 일어나 캐리어부터 세운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 속에 들어 있다. 승객들 속을 나와 1번 게이트 쪽으로 걷는다. 대합실은 한두 시간이면 물갈이가 돼서 다시 아무도 모르게 된다. 내가 안다는 건 나만의 문제다. 사람들에게서 숨을 수 있지만 자신에게선 숨을 수 없다. 삭발의 발길질은 “아닌 척”을 놓쳐버린 것에 대한 행패인가. 정신 차리라니. 저년 심보는 무엇인가. 올림머리에 대해 삭발은 다른 노숙자들과 다르게 생각한다. 올림머리의 “아닌 척”이 꼴보기 싫다. 신경질과 비웃음의 거래에만 멈추는 건 삭발로선 최대한 참은 거다. 올림머리가 먼저 거래를 깨뜨렸다. 승객들 틈에 앉아 졸고 있었고, 눈길이 마주쳤는데 신경질을 보내지 않고 다시 졸음 속으로 빠졌다. 발길질은 거래 위반에 대한 응징이다. “이 년도 노숙자”임을 승객들에게 폭로한 거다.

광장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을 꺼내려고 캐리어를 열다 말고 하룻밤 잠자리를 정한다. 오늘은 인천국제공항이다. 몸을 돌려 대합실을 가로지른다. 엘리베이터는 밀착을 피할 수 없다. 에스컬레이터를 여러 번 바꿔 타며 지하로 내려간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인천공항 대합실까지는 우산도 돈도 필요 없다. 어르신 교통카드만 챙긴다. 공항철도 행 에스컬레이터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쇠 비린내. 피 비린내. 없이 사는 사람들은 화려하고 청결한 것들에서 역한 비린내를 맡는다. 국제공항에는 유령들이 많다. 한국인 노숙자와 가난한 노인들에 더해, 공항 근처 “파라다이스” 카지노에서 털린 중국인 도박꾼과 브로커들도 늘고 있다. 카지노는 욕망으로 부글대다 잭팟을 맞은 소수의 한탕꾼과 순식간에 추락해 유령처럼 떠도는 잉여들이 뒤엉킨 아수라장이다. 카지노에서 제공하는 무료 셔틀버스는 잉여들을 공항까지 데려다 주고, 밤새 돈을 긁어모은 도박꾼들은 다음 날 셔틀버스로 카지노에 간다. 국제공항에는 추방이나 허가 결정을 대기 중인 난민들도 산다. 서울역보다 훨씬 넓고 후미진 곳도 많다. 서울역에는 의자 칸막이 때문에 잠시라도 누울 곳이 없지만, 국제공항 의자는 다르다.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눕거나 자는 승객들도 많아 가끔 하룻밤을 자는 것으로 청소부나 직원들의 의심을 받지 않는다. 의심을 받더라도 도둑질이나 폭력 등 범법이 벌어지지 않는 한 쫓겨나지 않는다. 노숙자에게도 파라다이스인 인천공항에 노숙자들이 더 많이 모이지 않는 이유는, 무료 급식이 없다는 것과 지하철 요금 때문이다. 


삭발
삭발에게는 오늘 하루만 문제다. 오늘이 내일이나 며칠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금세 내일 이후를 잊고 ‘오늘 혹은 지금 당장’ 어떻게 할지만 생각하고 행동한다. 미해결된 어제나 그 이전 문제들이 수두룩하지만, 당장의 문제로 닥치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아니다. 광장 안팎에서 벌리는 숱한 싸움질이나 도둑질이 그냥 지나가면 땡큐다. 닥치면 또 어떻게든 되어갈 거다.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면 귀찮아진다. 광장에서 벌어진 범법에 여자가 가해자로 연루됐다 싶으면, 노숙자들이건 경찰들이건 광장 사람 누구라도 삭발을 먼저 떠올린다. 경찰이 자신을 찾으면 일단 숨어본다. 돈이 있거나 빌릴 수 있으면 지방 어디로 가서 돈 되는 때까지 떠돌다 곧 제 발로 돌아온다. 자주 드나드는 경북의 신경정신병원 사무장에게 연락하면 당장 차를 가지고 서울역까지 데리러 온다. 이전 입원들에서 만든 문제가 남아있지만, 병원 입장에선 며칠을 입원하든 돈이다. 물론 곧 돌아온다. 병원은 심심해서 지겹고, 법망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 외에도 서울역으로 돌아올 이유는 많다. 서울역 광장이 집이고 놀이터이고 자기 나와바리다. 하지만 서울역도 도착지는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도중에 있다. 광장 근처 쪽방촌에 방이 있기는 하지만 기초수급자 자격을 유지하려면 주소지가 있어야 해서 얻어둔 방이다. 방값만큼 주거지원비가 나오니 말하자면 국가가 집주인에게 주는 거다. 십대 중반 가출할 때 서울역에 가고 싶은 마음에 설렜다. 고향이고 집이고 부모고, 남들 말 따라 그리워지는 거고, 어딜 가든 서울역으로 돌아오고 싶다. 돌아와 경찰과 검찰을 거치다 보면 형량이 얼마나 나올지 감이 온다. 정신장애인 등록증은 형량을 줄여주고, 이전 건의 집행유예기간이나 누범 등은 형량을 늘린다. 이전 거라고 해봤자 사기, 절도, 금품 갈취, 건물 침입, 폭행 등 잡범이다. 하도 많아 기억도 안 나지만 그만큼 재판을 많이 받아 형량에 대해 통밥이 잡힌다. 기껏해야 수개월 형이거나 벌금형이다. 벌금이래 봤자 수급비로 받은 돈에서 나가니 국가가 준 돈 국가가 가져가는 거다. 먹히겠다 싶으면 불쌍한 척, 반성하는 척도 하면서 깎는 데까지 깎는다. 그래도 모자라 몸으로 때우기 일쑤다. 깜빵은 술 담배를 못 하고 갑갑하지만, 배짱 맞는 이모 언니 동생들을 새로 만나는 재미가 있다. “야, 나 이십구범이야! 내가 삼십범 되는 게 겁날 것 같아?” 올림머리를 비롯해 누군가를 협박할 때 삭발이 자주 쓰는 말이다. 그야말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라는 찬송가 가사 그대로다. 세상 누구에게든 미안할 것도 감사할 것도 없다. 광장 바깥의 윤리나 상식에 대해 삭발은 ‘너네는 그러고 살아라’라는 입장이다. ‘도둑질하지 말라’, ‘허락 없이 남의 집에 들어가지 말라.‘ 따위는 탐낼 만한 재산이 있거나 대문을 잘 잠가야 하는 사람들이 만든 법이다. CCTV를 조심하기는 하지만 발각이 예상돼도 마음이 내키면 일단 훔치고 본다. 실패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안 걸리면 땡큐고, 걸리면 재수 옴 붙은 거다. 죄책감 따위는 오래 전에 버렸다. 그건 거추장스럽고 쓸모도 없다. 없는 사람 걸 뺏고 훔칠 때 꺼림칙하기는 하다. 있는 놈들 걸 훔치고 싶지만, 있는 놈들과는 만날 일이 거의 없다. 광장 인근의 경찰, 인권 활동가, 노숙인지원센터 직원, 목사, 노숙인 부류들과 그럭저럭 관계를 이어가다가 어느 날 쌍욕을 싸지르고 튕겨 나가거나 피하거나 사라졌다가, 뜬금없이 안부를 물으며 돌아온다. 이유도 때도 없고 자기 마음대로다. 충동적이고 불가해하다. 어디서나 탈주하고 유랑하며, 수시로 위험하다. 다들 그러려니 한다. 누구에게도 무엇으로도 포획되지 않는다.

쉰 초반. 작은 키에 어깨가 벌어졌고, 광장 어디서든 다리를 벌리고 앉아 담배를 피운다. 광장이고 쪽방촌이고 거리에서, 얻을 수 있는 거 다 얻고 뺏을 수 있는 것도 수시로 뺏는다. 남들에게 주기도 잘 준다. 돈 나오는 20일이면 한 달치 담배를 사고 한 달치 삭발을 한다. 남은 돈으로 한 달을 사는 건 항상 부족하지만, 그 사이 다음 달 20일이 온다. 쌍욕을 섬뜩하게 하고 웃어 제낄 땐 몇 개 남지 않은 이빨과 잇몸 사이로 목구멍이 보인다. 그 얼굴에 징그러운 웃음을 실은 사진을 찍어 쌍욕 대신 아무나에게 보낸다. 살아온 삶에도 남은 삶에도 목표니 희망 따위는 없다. 닥치는 대로 살면 된다. 나아질 것도 나빠질 것도 없다. 쪽방촌과 광장에서 어울리는 사람들이 여럿이지만, 아무도 믿지 않고 자신도 믿지 않는다. 아무 때나 잠들고 아무 때나 먹는다. 마음 내키는 대로 돈 되는 만큼 떠났다 돌아온다.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고, 누구에게도 오래 마음을 주지 않는다. 거칠게 사느라 당뇨, 녹내장, 고혈압, 정신장애 등등 병이 많지만 아직은 그럭저럭 살 만하다. 아픈 게 귀찮아지면 죽을 거고, 그 전에 사는 게 도무지 재미가 없어지면 죽을 거다. 사는 재미야 때마다 바뀐다. 살든 죽든 어떤 책임도 없고 아까운 것도 없다. 죽는다고 안타까워할 사람도 없다. 자기 죽음으로 정부 지출이 주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귀찮고 지루한 삶을 더 살 수는 없다.


자급자족
올림머리는 자기 한몸 자기가 해결하다 죽는 게 삶의 목표다. 올림머리의 일상은 돈 계산에 의해 정해진다. 통장에 묻어둔 200만 원은 가능하면 손대지 않는다. 그 덕에 덜 배고프고 덜 서럽다. 그 돈을 제외하고 현재 얼마가 있고, 당분간 얼마를 쓰게 되고, 그러니 얼마를 벌어두어야 하는가가 계산의 전부다. 깔끔함을 유지하면서, 무료급식 줄에 서지 않고, 노숙인 지원센터에 가지 않고, 최대한 광장이나 거리에서 자지 않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 일상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시간과 몸이 벅차다. 

먹는 데에 하루 10,000원을 넘기지 않으려 한다. 한 달이면 300,000원. 휴대폰 사용료는 최저가로 월 15,000원. 연락을 주고받는 관계는 거의 없고, 검색 등 세상과의 연결도 피씨방을 이용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이 지불은 불가피하다. 24시간 찜질방 야간은 사흘에 한 번 정도. 서울역 근처는 15,000원이 넘는다. 비싸기도 하고 아는 얼굴을 마주칠 위험도 많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 바깥으로 나간다. 한 달에 150,000원 정도다. 역 근처가 이동에 좋다. 새벽에 여탕에 사람이 많지 않고, 카운터 직원이 얼굴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 곳으로 경기도권에 세 군데를 정해두었다. 최대한 잘 씻고, 잘 자고, 늦게 나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퇴실 시간 규정이 중요하다. 그녀가 가는 찜질방들은 입실 후 15시간이 지나서 재결제다. 밤 10시에 들어가 15시간을 꽉 채우고 다음 날 오후 1시에 나온다. 배를 채우고 돈 벌러 가기에 딱 좋은 일정이다. 그 세 곳을 찾느라 허탕을 많이 쳤다. 문이 닫힌 찜질방 앞에서 한 시간을 서 있던 적도 있었다. 인터넷에는 24시간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유리문에는 ‘영업시간 변경’이라고 적혀 있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사 먹고, 첫차가 올 때까지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버텼다. 한 번은 찜질방에 들어갔다가 카운터 여자가 물었다. “짐은 그게 다지요?” 대답하지 않고 돌아나왔다. 짐에 대한 질문은 노숙자 여부를 묻는 것으로 들린다. 모든 살림살이를 들고 다니며 사는 사람. 그 찜질방은 더 가지 않았다. 

찜질방에 들어가면 먼저 거울을 본다. 더 살 만한가. 계산을 하고, 사물함 키를 받고, 옷을 벗는다. 그 순간이 늘 싫다. 몸은 포장도 변명도 하지 않는다. 주름, 검버섯, 마른 어깨, 늘어진 배, 굳은 발뒤꿈치. 그저 늙은 여자일 뿐인데 자기 몸에서 노숙자를 찾는다. 찬찬히 얼굴을 들여다본다. 눈매, 입술 주변, 이마, 이빨과 잇몸, 목덜미, 머리카락. 얼굴은 가장 먼저 배신한다. 샤워기 아래에 서면 얼굴부터 씻는다. 얼굴이 무너지면 사람이 무너진다. 다 씻고 찜질복을 입고 다시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본다. “아직 괜찮다.” 그 문장을 믿는다. 믿어야 덜 힘들다. 찜질방을 가는 이유는 종로 3가를 가기 위해서다. 나오기 전 얇게 화장도 한다. 몸을 사는 사람에 대한 올림머리의 태도다. 

밤샘 피씨방을 한 달에 열 번 정도 간다. 주로 가는 피씨방은 수원역과 동인천역 근처 두 군데다. 막차를 타고 역에서 내려, 피씨방 근처에서 시간을 보낸다. 새벽 2시 5분 전에 들어가 다섯 시간을 끊는다. 하룻밤 5,000원, 한 달 50,000원 정도다. 피씨방은 화장실이 중요하다. 간단한 샤워와 세탁을 할 만한 여자 화장실이 따로 있는지, 밤샘 여성 이용자가 많지 않은지, 문이 제대로 잠기는지 등이 필수 요소다. 새벽 3시면 사람들은 대개 잠든다. 의자에 몸을 묻고, 헤드셋을 낀 채, 입을 벌리고 잔다. 그때 올림머리는 캐리어를 열어 바가지와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화장실로 간다. 문을 잠그고, 옷을 벗는다. 물소리가 크지 않게 꼭지를 조정한다. 얼굴을 씻고, 목을 닦고, 머리를 감고, 보지와 겨드랑이를 닦고, 발을 닦는다. 바가지에 물을 담아 전신을 헹군다. 긴 머리의 물기를 꼼꼼하게 닦는다. 속옷과 옷을 갈아입고, 버릴 것은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자리로 돌아온다. 풀어헤쳐진 머리를 묶어 올리기 위해 아침 6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놓는다. 헤드셋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는다. 가장 먼저 한 문장이 떠오른다. “나는 노숙자가 아니다.” 처음에는 설명이 붙어 긴 문장이었는데, 늙을수록 점점 짧아졌다. 나는 노숙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길에서 자지 않으니까. 나는 노숙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씻으니까. 나는 노숙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얻어먹지 않으니까. 이제는 짧은 문장만 남았다. “나는 노숙자가 아니다.” 그 문장을 반복할수록, 그 문장이 거짓임이 선명해진다.

나머지 10일 정도는 인천국제공항, 대형병원, 거리나 빌딩의 어느 구석진 자리 등에서 잔다. 식비, 찜질방과 피씨방 요금, 휴대폰 요금을 합하면 한 달에 565,000원. 이래저래 한 달에 70만 원에서 80만 원이 필요하다. 식당 설거지, 건물 새벽 청소, 24시간 김밥집, 밤샘 떡이나 반찬 포장 등 갖은 몸 노동을 하며 200만 원을 모았다. 이제는 몸 파는 노동만 남았다. 몸 파는 노동은 생애 내내 해온 거고, 그 사이사이 몸 노동을 해왔다. 올림머리에게 몸 노동과 몸 파는 노동은 같다. 지방 소도시에 살면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먼저 식당에서 일하다가, 열다섯 살부터는 식당 알바와 술집 알바와 ‘2차’를 함께했다. 때론 낮 밤 없이 일했지만 술주정뱅이 아버지에 식구들도 많아 돈을 모으기는 고사하고 더 벌어오라는 압박에 시달렸다. 몸 파는 노동과 임신을 이유로 칼부림하는 아버지를 그 칼로 뺏어 죽이고, 집을 나와 서울로 숨어들어 아이부터 뗐다. 아버지 살해는 가족뿐 아니라 국가와도 평생 단절을 의미했다. 주민등록증을 내미는 어떤 자리도 가지 않거나 피하며 살았다. 나중에 어머니와 동생들이 긴 실종을 이유로 사망신고를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망신고는 늘 음지를 찾아다니게 했지만, 사망신고가 아니라 해도 그 음지들 말고 자신이 갈 수 있는 양지라는 게 애초에 없어 보였다. 공적으로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언제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느낌이어서 오히려 편했다. “친부 살해“는 그녀를 당당하고 독한 여자로 만들었다. 마흔 초반까지는 싸구려 몸 노동 외에 몸 파는 노동을 주로 했다. 몸 파는 노동은 몸 노동에 비해 돈도 되고 편했다. 그러다 한 남자와 동거했고, 남자의 폭력이 이어지면서 그를 죽여버릴 것 같아 집을 나왔다. 다시 술집에서 일했다, 쉰 초반에 있는 돈을 다 긁어모아 남의 명의로 맥양집을 열었고, 장사가 되지 않아 식당 설거지도 겸했다. 맥양집도 식당도 월세방도 재개발 때문에 없어졌다. 지하방과 옥탑방과 쪽방과 여인숙을 전전하다가 방세를 못 내 떨려났고, 어느 날 다음 들어갈 방을 구하지 못해 거리의 삶이 시작되었다. 3년 전 공중화장실에서 어르신 교통카드를 주웠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계속 사용이 가능하다. 이미 60대 말인 그녀가 어르신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사용할 때까지 사용하다가, 어느 날 끝나면 버릴 생각이다. 

종합병원 보호자 휴게실은 올림머리가 애용하는 쉼터다. 재수가 좋으면 낮은 물론 하룻밤을 지낼 수도 있다. 지친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 간병인이나 청소부들은 알아봐도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조선족 간병인들은 자기 방 없이 병원을 집 삼는 사람이 많아, 노숙인들 처지에 공감하기도 한다. 건물 관리를 맡은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지만, 눈 감아도 될 위치이면서 구태여 찾아와서 “보호자세요?”를 넘어 ”환자가 몇 호실 누구세요?“까지 묻는 종자들이 있다. “못 돼 쳐먹은 것!” 찰진 욕을 뱉어주고 천천히 걸어 나온다. 그 병원은 다시 안 가면 된다. 도시는 넓지만, 쉴 곳은 빠르게 줄어든다. 때론 밤새 문을 잠그지 않은 빌딩의 계단참이나 화장실을 차지하기도 한다. 혼자여서 편하지만, 혼자여서 더 위험하다. 


몸을 팔아 돈을 산다.
종로 3가역에 내려 캐리어를 지하철 물품 보관함에 넣는다. 남자 노인들은 종로 3가 인근에선 주눅이 가시고 눈에 생기가 돈다. 여기저기서 퇴물 취급이지만 여기서는 많이 모여 있으니 괜찮다. 낯선 여자는 아니어서, 알아서들 다가온다. 담배 냄새, 막걸리 냄새, 오래된 침 냄새. 너 나 없이 늙는다는 건 그런 거다. “얼마야?” 서너 달 전까지 손가락 네 개였는데 그 사이 하나를 접었다. “비싸네.” 올림머리가 돌아섰고 남자가 잡았다. 노인은 앞장서더니 근처 여인숙으로 들어간다. 시간당 20,000원짜리로 샤워실이 따로 없는 방이다. 합계 50,000원. 차림으로 보아 그에게도 큰 지출이다. 올림머리는 한 시간 동안 노인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수행한다. 돈값을 해 주는 것은 장사의 도리다. 서지 않는 자지를 오래 조물조물 만져주고 혀로 핥아주고 입에 넣어 오물거린다. 다리를 넓게 벌려 보지를 보여주고, 손가락을 넣게 해 준다. 여자의 성근 이빨과 남자의 틀니가 상대의 혀와 입술을 만나 서로 부딪치고 핥고 빨며 뒤엉킨다. 늙은 남자가 늙은 여자의 젖가슴을 빨고 주물거리는 동안 여자는 남자가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준다. 남자가 휴대폰 번호를 물었고, 여자는 자기가 연락할 테니 번호를 달라고 했다. 

여인숙을 나와 지하철 화장실로 간다. 손을 씻고 화장을 고친다. 거울 속 여자는 무표정이다. 화장실로 들어가 돈을 지갑에 챙겨 넣는다. 좌변기에 앉아 쉬다가 약속 시간에 맞춰 다시 몸을 팔러 간다. 오늘은 서너 탕은 해야 한다. 두 번째 남자는 이틀 전 휴대폰 통화로 예약을 했다. 지난번이 처음이었다. 돈이 좀 있어 보였다. 샤워실이 있는 모텔방을 빌렸고, 40,000원이라고 했는데 50,000원을 선불했다. 나중엔 피곤하다며 두 시간을 더 연장해 같이 잠을 잤다. 남자가 휴대폰 번호를 주며 연락할 날짜와 시간을 알려줬고, 그렇게 오늘 약속이 잡혔다. 그가 단골이 되기를. 오늘도 푹신한 침대에서 낮잠을 즐길 수 있기를.  

몸이 안 팔리면, 죽으면 된다.














최현숙 Choi Hyunsook


광장의 “미친” 여자들 (3):  올림머리와 삭발 (1)

최현숙은 ‹광장의 “미친” 여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여성 노숙인들의 말과 삶에 대해 쓴다. 전시 기간 동안 한 달에 한 번, 네 편의 글을 연재한다. 그야말로 퀴어인 ‹광장의 “미친” 여자들›의 마지막에는 최현숙 자신이 있다.

일시: 2026. 5. 20.
장소: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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