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미친” 여자들 (2)
“미친” 여자가 말하는 다른 “미친년들”

광장에서 자주 거처를 옮기던 화영은 2023년 여름쯤부터 2025년 말까지 광장 파출소 근처 커피 자판기 옆에 살았다. 내가 만나온 중 가장 길게 머문 거처다. 광장과 철도용지 사이 펜스를 벽 삼아 7, 8개의 장우산을 반원 대형으로 펼쳐놓고 바닥에 박스를 깔고 지내다가, 나중엔 펼쳐진 우산들 안에 텐트를 들여놓고 그 안에서 지냈다. 처음 텐트를 친 것이 겨울 초입이니 추위를 피하기 위한 용도였겠지만, 한여름 뙤약볕과 무더위에도 거의 텐트 안에서 지냈다. 떠죽었을까 싶어 신경질이든 뭐든 사람 소리가 날 때까지 부른 적도 여러 번이다. 무더위와 강추위는 광장 사람들 사망의 주요 원인이다. 아직 화영이 여성쉼터를 드나들던 어느 날, 그러니까 쉼터에서 독극물 건으로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난 며칠 후 어느 낮, 광장을 걷고 있는 나를 보더니 우산들 안으로 불러들였다. 우산들을 건너 후원물품이나 말을 건넨 적은 많지만, 그 안으로 불러들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텐트 바깥에 박스를 깔고 퍼질러 앉았고, 그녀는 텐트 문을 열어놓고 안에 앉았다. ‘작가니까 얘기를 해주는 거’라며 녹음기부터 누르라고 했고, 나는 그녀가 언급하는 “다른 미친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광장 안팎과 지하도 내 그녀들이 살았던/살고 있는 장소들을 머릿속으로 좌표를 찍어나가며, 그녀 말의 톤과 표정에 응하면서 주로 들었다. 화영은 광장에 살고 나는 광장을 들락거리지만 광장에 나온 시기가 비슷해서인지 그녀가 아는 “미친년들”은 모두 내가 아는 여자들이었다.
“선생님은 작가니까 노숙을 꼭 해 보세요. 온갖 미친년들 다 모여있으니 얼마나 재밌겠어요? 세상 젤 좋은 글감이 광장에 있어요. 나야 그년들이 뿌리는 독극물 때문에 너무 힘들지만, 선생님한테는 안 그럴거에요. 뭐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그년들은 선생님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지금은 정신병원에 행정입원된 한 여성 노숙인을 언급하며) 그 미친년이 내 우산을 뺏어가지고 안경을 벗기려구 확 치더니, 안경은 못 벗기고 여기 눈가를 찔렀던 거에요. 경찰까지 왔었는데, 처벌 면하려구 미친 척을 하더라구. 미친 게 절대 아니에요. 바로 옆에 살아봐서 다 알아. 나랑 싸운 걸로 정신병원 끌려간 건 아니에요. 그렇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건 절대 아니에요. 맨날 그년 근처에 있던 그놈 알지요? 그놈이 남편이란 말도 있었어요. 어느 날 그놈이랑 우산으로 찌르고 때리고 하면서 싸우다가 경찰들이 와서 둘 다 경찰서로 끌려갔고, 그 길로 안 돌아온 거에요. 자기 집 마당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들을 다닥다닥 써붙여놓은 채 그대로 병원으로 끌려갔나 봐요. 그 남자는 지금도 돌아다녀요. 재재작년 겨울 초입쯤에 여성쉼터에서 선생님이 상담했던 경미 기억나세요? 그년이 미친년 중에 젤 상찔이(최고)었어요. 상담해 봤으니 아실 거잖아. 지 배꼽이랑 귀랑 목구녕에 조직폭력배가 칩을 넣어두고 자기를 항상 도청한다잖아요. 원래 그년이 조직폭력배한테 집단으로 성폭행 당했고 하마트면 장기적출까지 당해서 죽을 거였는데, 나한테 독극물을 뿌리는 걸로 임무를 바꾸고 대신에 몸 세 군데에 도청 칩을 달고 여기 서울역으로 보내졌던 거에요. 자기 목숨이 달렸으니까 젤 악질적으로 독극물을 뿌렸지. 근데 너무 악질적이라서 그년만 보면 내가 막 난리 버거지를 쳤거든. 접근을 아예 못하게 하려고. 그래서 임무 수행을 제대로 못했는지 어쨌는지, 몇 개월 보이고는 겨울이 다 끝나기도 전에 사라지고 지금까지 안 나타났잖아요. 조폭들한테 끌려가서 장기적출 당하고 죽었을거야. 여기는 그런 일들이 많아요. 그런 걸 제대로 알려면 노숙을 해봐야 돼요. 저기 저 짐 잔뜩 쌓아놓고 사는 년은, 지금이야 짐 때문에 꼼짝도 못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뭐 주는 데라면 귀신같이 알고 쫓아다녔어요. 그년이 1월 12일 날 10시경에 마장동 제일교회에서 오렌지 주스 줄 때 내 가방에다가 독극물을 넣었어. 작년 겨울 전까지 중앙 계단 위에 살던 그 늙은 년 알지요? 서울역에 기도하러 왔다던 년, 지 말로 불교 신자니 도를 닦느니 하는데 완전 위선이에요. 대자보에 횡설수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써서 목에 걸고 다니던 얼굴 쪼끄만 년, 그년을 그 늙은 년이 항상 챙겨 줬잖아요. 두 년 다 아주 미친년들이야. 구정 날 내 물건 주위에 서 있으면서 내 가방이랑 우산 꼭지랑 우산 손잡이에다 살충제를 부어 놨어, 그 늙은 년이. 내가 막 뭐라 그러니까 대자보 년이 나서서 더 지랄 지랄 하더라고요. 둘이 같이 부산에 있는 절에 간다고 하고 없어졌잖아요. 맨날 초록색 잠바 입는 그년, 뭐 줄 거면 돈이나 달라고 하는 그년도 뿌려요. 그년은 돈 구걸도 하고 독극물 뿌려서 돈 모아서 쪽방촌 여인숙에서 자기도 한대요, 저기 대합실 앞 국기게양대 청소하는 청소부 아줌마, 그년도 청소하는 척하면서 살충제를 뿌려. 그게 다 아주 맹독이야 맹독. 내가 막 난리를 치니까 뭐 코로나 때문에 소독을 자주 하라고 시켰다더라고. 요즘은 코로나 핑계로 독극물이 더 난리가 난 세상이 돼 버렸어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독극물이 더 사람을 잡아요. 그래서 내가 맨날 아프다니까. 그년들만 왔다가면 막 몸이 가렵고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워요. 여기 있는 년들 다 마찬가지야. 지하도에서 살면서 세상 부흥회는 다 쫓아다니는 란희있잖아요. 영구임대 아파트까지 지원 받아놓고, 옆집 남자가 찝쩍거린다고 아파트 비워두고 노숙하면서 식당 설거지 나가는 년. 걔는 부흥회란 부흥회는 다 쫓아다니면서 뭘 기도하고 뭘 회개하는지 모르겠어요. 나한테 독극물 뿌려서 돈 받아쳐먹는 그거는 왜 회개가 안 되냐고요. 그건 맹신이에요, 맹신. 지가 만든 하나님에 지가 미친 거지. 그 이쁘장한 미자 할머니, 맨날 혼자 중얼 중얼 하던 그 노인네는, 처음에 봤을 때는 착했거든. 얼굴값을 하느라 착하구나 생각했댔어요. 근데 아니더라고. 그 늙은년도 구정 지나고 언제 독극물을 뿌리더라구. 그 할머니도 정신병원 갔어요. 자기가 보내달라고 했대. 독극물 뿌리는 년들은 다 조직폭력 대빵한테 돈을 받는 거야. 돈 때문에 살인마 짓거리를 하는 거야. 지하도에 사는 난쟁이 년 있잖아요. 선생님이 그년한테 잘 챙겨주더라고. 그년도 작년 9월 중순경에 다시서기 센터 화장실에서 내가 얼굴 씻고 있는 사이에 독극물을 부었어요. 잠은 인천국제공항 가서 자면서 서울역에 밥 얻어먹고 사람 만나러 오는 진희 있잖아요. 그 여자는 아직은 독극물 뿌리는 걸 못 봤어요. 그 여자는 서울역 나와서 도시락이랑 빵이랑 모아 가지고, 인천공항 노숙자들한테 갖다 주더라고요. 착한 여자야. 빨간 캐리어 끌고 다니는 애하고 같이 다니는 입 나온 애. 걔네도 나한테 살충제를 뿌려. 독극물 안 뿌린 사람이 하나 더 있다. 그 왜 이 남자 저 남자랑 붙어다니면서 남자 잡아둔다고 또 임신했다가 남자 떨어지면 또 떼는 그년. 걔 이름이 혜자라고요? 난 걔 이름은 몰랐댔어. 술 처먹으면 남자고 여자고 아무나 붙잡고 싸우잖아요. 욕이고 싸움이고 제일 잘해. 걔는 덜 떨어진 건지 미친 건지 똑똑한 건지 헷갈려요. 지가 하는 게 연애질인지, 몸 파는 건지, 성폭행당하는 건지, 그런 걸 구분을 안 하더라고, 하하하. 근데 그년이 요즘 안 보여요. 이번엔 또 어떤 놈이랑 어디 처박혀서 애를 만들고 있는 건지. 똑똑한 년은 똑똑해서 덜 떨어진 년들은 덜 떨어져서, 하여튼 나한테 독극물 안 뿌린 여자는 인천공항 진희하고 뚝하면 임신하는 그, 아 맞다 혜자, 그 둘밖에 없어요. 여기 여자들은 죄다 돈에 팔려서 살인마가 되는 거에요. 남자들도 하긴 하는데 남자들은 접근하기가 어렵잖아요. 남자들 오면 내가 막 더 소리를 지르거든. 그러니까 남자들은 아직 안 했는데 잠깐이라도 신경을 안 쓰면 어느새 시도를 해요. 남자들도 뿌린 놈들 많을 거야. 내가 미처 못 봐서 그렇지. 우산이랑 텐트랑 빨아서 구역사 앞 펜스에 걸쳐 널어놓으면 그년들이 와서 살충제를 뿌려. 마를 때까지 내내 지켜보고 있어야 돼. 햇볕 좋은 날 이불이랑 침낭, 살림살이들을 볕에 소독되라고 내다 널거든. 광장이 터지라고 찬송가랑 통성기도를 바락 바락 하는 년 있잖아요, 키 쪼끄맣고 마른 그년, 그년이 내가 널어 놓은 살림살이에 뿌리는 걸 봤어. 동자동 쪽방촌에 살면서 여기로 빵이랑 도시락이랑 타러 나오는 휠체어 탄 약쟁이 년, 개 데리고 다니는 년 있잖아요. 걔는 휠체어에 개 밥통이랑 비둘기 밥통이랑 약통이랑 독극물통을 똑같은 까만 비닐 봉지들에 담아 쪼로록 달고 다녀. 미쳐도 쎄게 미친 년이라 봉지들을 맨날 헷갈릴 거에요, 하하하. 머리 빡빡 민 빵쟁이 그년이야 말할 것도 없지. 근데 그년도 언젠가부터 안 보이더라고요. 누가 독극물을 뿌리는지 나는 안 봐도 다 알아요. 육신의 눈으로 본 것도 있고, 성령의 눈으로 본 것도 있어. 하나님이 나한테만 보여주셔요. 그래서 내가 그년들하고 맨날 맨날 싸워야 돼요. 그러다 보니 맨날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돼고.”

연애, 순결, 하나님

“저를 죽이려는 사람은, 저를 사랑하는 사람의 현재 부인이에요. 97년 4월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여자한테 독극물을 당했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독극물 때문에 아픈 줄도 모르고, 2014년 5월 말에서야 그걸 알게 된 거에요. 폭력배들 시켜서 내가 살던 집에 쳐들어와서 막...... 저기를 하고 독극물까지 뿌리고 도망간 거에요. 나는 독극물 생각은 못하고 그냥...... 얼른 병원을 갔더니 몸 여기저기서 독극물 성분이 나온다는 거에요. 그래서 집을 나온 거에요. 다른 데로 이사 가도 소용없어요. 저는 노숙하는 게 훨씬 안전해요. 시설이나 병원은 도망갈 데가 없잖아요. 노숙을 하면 독극물이든 나쁜 년놈이든 피해서 도망갈 수가 있어요. <......> 그 분은 결혼하면서 인생이 힘들어진 거에요.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하면서 말소리가 커지고 빨라진다.] 대한민국 최고의 살인마 폭력배 집안 여자하고 결혼을 한 거에요. 살인마 유전자가 있는 집안 딸이니까 말도 못해요. 그 여자가 이혼을 안 해주는 거에요. 이혼해 줬으면 벌써 저한테 왔지요. 저는 결혼한 적 없어요. 저는 처녀에요. 나이는 많아도 완전히 깨끗한 처녀에요. 성관계도 해본 적 없어요. 결혼을 안했어도 쉰이 넘으면 진짜 처녀는 없잖아요. 저는 진짜 순결한 처녀에요. 천주교 그 성모 마리아, 내가 그거에요. 하나님이 알고 내가 알고 그 분이 알아요. 우리는 서로 완전히 믿어요. 선생님도 믿으셔야 돼요. 폭력배들이 한꺼번에 ...... [갑자기 말을 멈추고 일어서 나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앉는다.] 옛날 천주교 순교자들 보면 신앙을 지키다 강간을 당해도 하나님이 깨끗하게 씻어주셨잖아요. 완전 처녀로 만들어주셨잖아요 하나님은 전능하셔요. 아무리 죄가 많고 더러워도 완전히 순결하게 씻어주셔요. 선생님, 드라마 그거 보셨어요? 이름이 생각 안 나네. 최고 인기 유명한 드라만데. 대합실 TV에서도 그거 방송해주거든요. 작가도 유명한데 이름이 기억 안나네. 그 드라마가 바로 내 이야기에요. 작가가 내 이야기를 알고 드라마로 만든 거에요. 어떻게 내 얘기를 드라마로 만들었는지, 그건 하나님하고 나하고 내가 사랑하는 그분, 그렇게 셋만 알아요. 작가도 모르고 방송국도 몰라요. [잠시 침묵하며 나를 주시한다. 나는 눈빛과 표정을 흩뜨리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믿지 않음’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셋만 알고 아무도 몰라요. 말해줘도 몰라요,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아도, 아무도 몰라도 상관없어요, 그분이 지금 너무너무 힘들기 때문에, 이 남자가 살려면 저랑 결혼해야 돼요. 하게 돼 있어요. 지금 저는 그걸 기다리는 거에요. 저랑 결혼해야 그 사람이 살 수가 있어요. 때가 되면 하게 될 거에요. 그래야 백프로를 사는 거에요, 산다는 게 그렇잖아요, 인생이라는 게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사는가가 중요한 거 잖아요. 정말 중요한 거에 가치를 두면 백프로를 사는 거에요. 근데 사람들은 십프로 살아요. 돈 벌고 자식 키우고, 그렇게만 살아요. 살아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살아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그분을 떠나왔는데도 이 남자가 저만 사랑하니까, 지금도 저를 죽이려고 하는 거에요, 97년 4월부터 지금까지 나를 죽이려고. 그때 내가 서른이었어요. 그니까 지금 그 사람하고 98년 99년 2000년...... 지금이 몇 년이에요? 2025년. 하여튼 저는 그 사람이 결혼한 거 안 뒤로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어요. 만나러 가지를 않았어요. 그 사람이 경주시 어느 국민은행에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제가 그때 당시에 아직 교사였어요. 폭력배들한테 당하고 나서 조기 퇴직을 했어요. 갑자기 사는 곳을 떠나야 해서 아예 조기은퇴를 한 거에요. 그분도 저를 만나려고 노력을 계속 하고 있어요. 저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여자가 저를 독살하려고 하는 거에요 지금까지. 그분이랑 만나고 살고 그런 건 없었지만 믿음이 생긴 거는 이분이 마음을 확실하게 보여줬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독극물이 들어와 가지고 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그분을 떠나왔어요. 떠나오지 말았어야 되는데 그게 너무 잘못이었어요. 이 사람도 나중에 성령 안에서, 그때 당시 떠났을 때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다 알게 됐어요. 우리는 일대일로 만나지는 절대 안 했어. 그 은행 안에서만 만났어요. 그러니까 저기, 연애를 하거나 사귀자고 하거나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둘이 말을 나눠본 적도 없었어요. 은행 안에서 만났는데 그분이 이제 저한테 이렇게 [눈으로 나를 마주 보고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했어요. 이렇게, 이렇게. 그렇게 자기 깊은 마음을 보여줬어요.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눈으로 한 거에요. 우리는 알 수 있어요, 서로. 그렇게 자기 마음을 보여줬어요. 그때 본 그 눈빛, 그거 하나면 충분해요. 그래서 그분하고 하나님하고 나만 아는 이야기라는 거에요. 다른 건 필요 없어요. 그렇게 마음으로 보여주고 마음으로 받고. 그러다 유부남인 거 알고 내가 만나러 가지 않은 거에요. 그러고는 하나님 안에서 매일 항상 만나는 거에요. 같이 있는 거에요. 여기로 나를 찾으러 오는 거요? 그러면 절대 안 돼요. 그렇게 하면 큰일 나요. 그러다가 둘 다 죽어요. 그러다가 독극물 그걸 그 부인이 저한테 그렇게 주입시켜왔다는 걸 알고 나서, 제가 메시지를, 내가 그 분한테 메시지로 상황을 얘기를 했죠. 휴대폰 문자나 그런 메시지가 아니고 하나님 성령 안에서 메시지를 보내요. 우린 늘 그렇게 대화해요. 메시지로 제가 살해 위협 때문에 한국에서 살 수가 없다고 하니까, 너무 힘들다고 하니까, 미국에 난민을 신청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미국에 갔었어요. 가서 난민 신청을 하면서 1년 4개월 살다가 왔는데, 받아들여질 상황이었는데, 이제 제가 계속 진행을 해서 거의 구십구프로는 받아낼 상황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살해당할 위협이 크다, 그 이유로 난민 신청서를 쓴 거지요. 영어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다 썼어요. 그 사람들이 다 읽어보고 판결을 하는 거에요.  

선생님은 지금 제가 다 얘기를 안 했기 때문에, 다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조금씩만 얘기를 하기 때문에 잘 모르셔요. 제가 이제 그냥 얘기하려면 너무너무 많은데 조금만 말씀을 드리니까 잘 모르시는 거에요. 그래서 이해를 못하시는데 어쨌든 저는 난민 이민이 거의 다 받아들여질 상황이었어요. 근데 거기 이민국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조직폭력배들이 많이 깔렸거든요. 그놈들이 나를 잡아가지고 멕시코로 넘겼어요. 제가 처음 미국 갈 때 엘에이[로스엔젤러스]로 가고 싶었는데 한국에서 엘에이 표를 안 끊어주더라고요. 그래서 멕시코를 거쳐서 갔었는데, 그 조폭들이 저를 잡아가지고 멕시코로 도로 넘겨버린 거에요. 한국에서 엘에이 표를 안 끊어준 이유는, 당연히 압력이 있었던 거지요. 그분 부인 쪽 집안 폭력배들이 압력을 넣은 거에요. 미국은 2018년 1월 18일에 가서 2019년 5월 9일 날 돌아왔어요. 돌아와서 ......어쩌다보니 서울역에 와 있더라고요...... 이상하지요? 안 믿어지지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못해요. 그런데 그분은 제 말을 다 알고 믿어요. 눈과 마음으로만 몇 번 만났지만 다 알고 믿어요. 그러니까 성령 안에서 하는 사랑인 거지요. 몸으로 하는 그런 남녀관계, 그런 거하고는 질적으로 달라요. 몸으로 하는 사랑, 섹스, 그런 얘기는 나는 아주 싫어해요. [점점 격앙되며] 그런 더러운 이야기는 생각하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아요.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싫어요, 그런 이야기.......”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려보려는 내 시도는 계속 실패했다. 화영은 사랑이나 섹스에 관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력하게 거부라도 하듯 점점 흥분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텐트를 나와 우산들을 건너 주변 광장에 커다란 원을 만들며 두어 바퀴를 돌았고, 다시 텐트로 돌아와 조금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었다. 나는 당시 대화에서도 그 이전에도 그녀에게 사랑이나 섹스에 대해 전혀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특히 화영의 정신장애 증상 중 하나가 연애 망상이라는 것을 알고는 일부러 그 이야기를 피해 왔고, 그녀는 내 반응을 간 볼 요량인 듯 슬쩍슬쩍 남자 이야기는 했지만 섹스 이야기는 없었다. 우산 집이나 광장에서 나눈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은 여성쉼터에서 이미 여러 차례, 길거나 짧게 나눈 이야기이기도 하다. 반복될 때마다 내용이나 주제는 조금씩 확장된 편이다. 지난 5년여 대화에서 사실관계는 늘 일관되었고, 숫자도 정확했다. 2019년 5월에 귀국했다고 하고 광장에서 나와 처음 만난 게 2020년 봄이니, 그 사이에 노숙을 시작했나 보다.
“그게...... 사랑과 섹스가 가능했으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죠. 사랑을 안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상황을 이해를 못하니까 나를 안믿는 거에요 지금, 지금, 우리 상황을 이해를 못하시니까 제 얘기를 지금 못믿으시는 거에요. ...... [같은 말 반복] 그런데 이 남자 이분은 제가 얘기하면 다 알아요.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대화를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도 알고 저도 알고 서로를 잘 알아요. 세상에서 이 사람만 저를 알아요. 하나님하고.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만 의지해요. [같은 말 반복] <......> 내가 독극물에 당한 거는 나하고 그분 이외에도, 그 여자도 알고 그 여자한테 지시받은 사람들도 알고 하는 거지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얘기를 해도 상황을 상상을 못하시니까 몰라요. 근데 믿어야 돼요. 믿지 못하는 게 문제에요. 선생님도 믿지 못하지요? 믿어요? 안 믿는 거지요? (정말 힘드셨겠네요. 저는 믿고 안 믿고 이전에 화영님이 많이 힘드셨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에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못 믿는 거잖아요. 그게 문제에요. 믿어야 돼요. [내가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을 반복해서 원망한다.] 지금 이분이 저를 도와줄 수가 없어요. 지금 도와주면 안 돼요.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이해를 못하시는 거에요. 아무도 몰라요. 아무도 몰라. 하나님하고 이분하고 말고는 아무리 얘기해도 몰라요. 그러니까 얘기가 안 되는 거에요. 아무도 몰라요.” 

“그것은...... 해결은 돼요. 해결은 되고, 지금 해결돼 가는 과정이에요. 해결이 되면 이분이 저를 데리러 여기로, 서울역 여기로 와요. 지금은 그분은 은행에 안 있어요. 퇴직해서 지금은 다른 레저 산업을 경영해요. 근데 해결이 되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거에요. 그 시간만 지나면 해결은 백프로 돼요. 그걸 내가 알아요. 왜 모르겠어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날카롭게 들여다보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좀 있으면 어쨌든지 간에 해결은 돼요. 바람이 아니에요. 바램이 아니라 해결이 돼요. 결국 해결은 돼. 왜냐? 이 상태로는 살 수가 없으니까. 지금도 연락을 해요. 언제라도 연락할 수 있어요. 우리만 아는 방법이 있어요. 97년 4월 3일부터니까 지금 25년이 넘은 거에요. 그렇게 오래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을 하는 사이인데 그걸 모르겠어요?”

정신병이든 아니든, 의심과 미움도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다. 안간힘이어서 더 시퍼렇다. 모든 고통은 그 탓에 죽지만 않는다면, 살아갈 힘을 남긴다. 죽으면 끝이니 그 또한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화영과 “그년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각자의 생애 서사와 경험과 처지, 상처와 미움, 두려움과 분노에 휘말려 살아간다. 자기 아픔과 원통함 덕에 남의 고통을 알 만큼 안다. 밀려 흘러 광장 밑바닥으로 고여들었다. 흘러가는 사람들, 쓸려 실려 정신병동에 갇힌 사람들, 그 바깥 소위 ‘사회’에서 돈과 정상(頂上, 꼭대기)과 정상(正常, 평범)을 좇아 달음박질하는 사람들. 그 구분이 있을 뿐이고, 구분하는 권력이 있을 뿐이다. 권력은 “쓰잘데없는” 생명들을 죽음 쪽에 배치하고, 시민들은 배제와 증오를 통해 그들을 마저 죽음으로 밀어낸다.

공포(恐怖). 제대로 기억도 정리도 해석도 되지 못한 충격적인 피해 경험은 무조건적 불안과 두려움을 남기고, 상상력과 소문에 의해 두려움은 공포로 증폭된다. 정신장애는 상대적으로 여성이 거리로 나오게 되는 중요한 경로이며, 여성에게 더 폭력적인 광장에서의 생존은 더 많이 더 빠르게 여성들을 미치게 만든다. 한편 광장과 거리가 아닌 홈리스 시설에서 65세 이상 여성 홈리스의 비율과 20년 이상 시설에 갇혀있는 여성 홈리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아주 높으며, 광장과 거리의 여성 노숙인들 중에는 독극물 공포와 미친년 공포 등 정신장애인들이 남성에 비해 훨씬 높다. 위생, 깨끗함, 순결, 안전, 건강, 여성성, 정상성 등에 관한 욕망과 좌절은, 모든 것이 결핍한 광장에서는 더 압축되어 드러난다. 게다가 빈곤판에는 신앙 마저 차고 넘친다. 광장에서는 많은 종교쟁이들 특히 예수쟁이들이 새벽부터 밤까지 고성능 확성기들을 틀어대며, 예수를 팔아 후원금들을 챙긴다. 빵과 떡과 과일주스로 광장 사람들을 유인해, 그들의 욕망과 좌절의 내력에 선과 악, 죄와 벌, 회개와 은총의 라벨을 붙여 땅에서부터 미리 지옥과 천당을 살게 한다. 더 미칠수록 더 소외되어 더 하나님과만 통한다. 

사람들은 무엇이 두려운지 설명할 수 없어 점점 더 두려워진다. 두려움의 정체, 귀신처럼 떠도는 소문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돌려세워, 그 상판대기를 직면해야 한다. 직면할 새도 없이 숱하게 팔아대는 욕망과 좌절의 난장판에서 허우적대느라, 사람과 사회와 세계는 공포와 혐오와 살육이 넘쳐나는 정신병동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다 2024년 말 화영에게 여성쉼터 출입정지가 통보되었고, 그로 인해 광장에서 나를 보아도 아주 거부적이었다. 나는 최대한 접근을 줄이며 안녕이라기보단 생존과 거주만 확인하곤 했다. 내게도 한동안 냉랭했다. 해를 넘긴 2025년 이른 봄, 화영은 다시 나를 우산들 안으로 불러들였다.
 
 “선생님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이게 내 성(城)이고 집이고 보금자리에요. 근데 그년들이 우산이랑 텐트에 독극물을 뿌려. 그걸 빠느라고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여기 안에 우산이 더 있어. 장우산 열두 개를 여성쉼터까지 들고 가서 빨았댔거든요.”
2024년 여름 낮 1시경 여성쉼터에서 서울역 사이 한강대로(왕복 10차로)변을 걷다가, 스타벅스 서울역사점 앞에 겨우 서 있는 한 여자를 봤다. 짐도 깡마른 몸도, 화영이었다. 왼손에는 장우산 여남은 개와 커다란 쇼핑백을 오른손에는 세로 1미터는 되는 연두색 캐리어를 붙잡고, 대로변 인도 한가운데 뙤약볕 아래 한동안 서 있었다. 쉬고 있는 거다. 우산들은 파란색 비닐 끈으로 세 군데가 묶여 한 다발로 되어 있었다. 여성쉼터에서 우산과 텐트를 빤 날이니 캐리어 안에는 세탁 후 물기를 뺀 텐트가 들어있을 터다. 앞지르지도 아는 체도 하지 않고 멈춰 보고 있다가, 내 일정 때문에 앞만 바라보며 그녀를 지나쳤다. 그녀도 나를 보았을 거다. 짐을 맡길 리 없으니, 당시도 나중에도 피차 못 본 것으로 하는 거다. 노숙인들 대부분은 특히 화영은 짐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는다.

“저절로 독극물이 씻겨나가게 비라도 매일 쏟아지면 좋겠어요. 처음에 그 빨래감들을 가지고 쉼터 들어갈 땐, 심장이 벌렁벌렁 했어요. 담 뒤에 숨겨놓고 작은 가방 하나랑 몸만 들어가고, 나중에 센터장님이랑 사람들이 안 볼 때 몰래 캐리어랑 우산들을 샤워실로 옮긴 거에요. 다 빨아서 마당에 널려고 들고 나오다가 센터장님한테 들켰어. 마루 바닥에 물이 줄줄 흐르니까 영자년이 뭐라뭐라 하더니, 아마 그년이 일렀을 거야. 처음엔 절대 안된다고 하더니, 내가 하도 사정 사정을 하니까 마당에 씽크대를 따로 마련해 주셨어요. 마당 수도꼭지에 호스도 연결해 주시고. 너무너무 감사하지요. 트리오는 내 돈으로 사서 가지고 다녀요. 다른 세제는 독극물이 많아서 믿을 수가 없고, 센터 트리오를 쓸 수는 없잖아. 내가 많이 쓰거든. 빨래도 샤워도 나는 트리오로만 해요. 그게 제일 좋다고 하나님이 직접 알려 주셨어요. 마당 씽크대에서 우산도 내 맘대로 빨고, 가방이랑 텐트도 빨았어요. 다른 빨래는 세탁기에 빨면 되고. 근데 세탁기는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쓰는 거라 믿을 수가 없어요. 세탁기를 내내 지키고 있을 수도 없잖아. 돌아가고 있어도 중지시키고 독극물을 넣는 걸 봤어요. 그걸 다시 빨고 건조까지 다시 하느라 그년들하고 또 얼마나 싸우고 미친년 소리를 듣고 그랬는데요. 다른 세탁기도 다 사용 중이라 자기네가 빨래를 못한다는 거지. 그래서 센터장님이 나만 문 열기 전에 일찍 와서 세탁이랑 샤워를 하게 해 줬어요. 나한테 잘해 주시긴 했어요. 근데 방 하나를 나만 쓰게 해 달라고 했더니, 그건 안 된다고 했어요. 방이 두 개뿐이라 절대 안 된다는 거에요. 마당에 널어놔도, 영자랑 정희랑 그년들이 또 독극물을 뿌리면 도로아미타불이잖아. 그래서 지키고 있어야 돼요. 어떤 때는 밥 시간에도 안 들어가고 배 아프다는 핑계로 마당에 있었어요. 하루는 마당 쪽으로 창문 있는 그 오른쪽 샤워실, 거기서 샤워하면서 계속 바깥을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근데 영자년이 독극물을 뿌리려고 우산 널어놓은 근처를 왔다 갔다 하다 나랑 눈이 딱 마주쳤어. 하하하, 그년 아주 나한테 딱 걸린 거야.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을 하더라고. 설마 내가 샤워하면서 지켜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겠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고래고래 욕을 했어. 그 소리가 거실까지 들렸는지 센터장님은 샤워실 문 두드리면서 나오라고 막 화내시고, 다른 사람들도 다 마당으로 나왔어. 큰 구경 난 거지. 난 다 벗고 있었으니 얼마나 웃겨, 하하하. 내가 영자 저년이 내 텐트랑 우산 빨아 널은 거에 독극물을 뿌린다고 했더니, 다들 막 나한테만 미친년이라는 거야. 영자년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고. 하여튼 쉼터 오는 년들은 다 한통속이에요. 선생님만 빼고 다 한 편이야. 선생님은 내가 믿어요. 센터장님도 잘해 주더니 결국 나한테만 책임을 묻더라고요. 나 때문에 자꾸 싸움이 일어나고, 그것 때문에 안 오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거에요. 근데 대체 내가 뭘 잘못했어? 나는 아무 죄 없어요. 결국 센터장님이 병원에 다니지 않을 거면 센터를 오지 말라고 했어요. 내가 병원을 왜 다녀요? 독극물을 뿌리는 년들이 나쁜 년이고 깜빵을 가든 병원을 가든 할 일이지, 멀쩡한 피해자인 내가 병원을 왜 가냐고요. 센터장님이 좋기는 한데, 꽉 막힌 뭐가 있어요. 그래서 센터를 안 가기로 한 거에요. 빨래랑 샤워 그런 게 나는 제일 중요한데, 그걸 못하면 미친년들 들락거리는 거기를 내가 갈 이유가 없지요.”
그날 화영이 대화 내용을 센터와 빨래 등으로 끌고 간 이유는, 나를 통해 센터장에게 센터 출입을 허락받기 위해서였을 거다. 혹독한 겨울을 텐트 안에서 꽁꽁 싸매고 지나며 몸도 마음도 더 망가졌고, 그러니 더 절실해졌을 거다. 센터장에게 광장에서의 대화를 전달하기는 했지만,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우산 안으로의 두 번째 초대가 효력이 없어서였는지 얼마 후부터 화영은 내게 이전보다 훨씬 더 거부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접근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하듯 장우산 꼭지를 들이밀며 악을 쓰면서 ‘오지 마’ ‘저리 가’ ‘멀리 떨어져’ 등을 외쳤고, 그 끝에 ‘너도 영자년이랑 똑같은 년이야. 그걸 내가 모르는 줄 알았지? 난 벌써부터 알고 있었어. 하나님이 다 알려줘, 이년아.’ 정도가 붙곤 했다. 몇 번 더 접근이나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녀의 발악과 거부는 그대로였다. 광장을 지날 때마다 그녀의 존재 여부만 확인했고, 혹 보이지 않으면 주변 노숙인들, 다시서기센터 정신장애 담당 사회복지사, 광장 파출소 경찰 등을 통해 “늘 그러는 거 말고 딱히 별일은 없음”만 확인했다. 누군가에게 악을 쓰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고, 볕이 유난히 좋은 날 낮에는 스트레칭을 하며 자기 집 앞 광장을 걷고 있는 것도 보았다. 빵과 음료수 혹은 도시락을 받기 위해 광장에 길게 늘어선 노숙인들의 줄에서 그녀를 보기도 했는데, 시선은 계속 자기 집을 향해 있었다. 텐트 안에서 소변과 대변을 비닐 주머니에 받아 텐트 바깥에 던져놓는다는 말도 들었고, 어떤 때는 그런 비닐 주머니들이 던져져 있는 걸 보기도 했다. 그녀가 보일 때면 눈이라도 마주치려고 조심스레 시선을 살폈다. 시선이 마주치면 고개를 아주 살짝 까딱해 보이며 아주 얇은 웃음과 상냥한 눈빛을 만들어, 그녀가 알아챌 정도만 보냈다. 그녀는 대체로 멸시했고, 가끔 ‘나쁜 년’ 정도의 욕을 뱉고 돌아섰다. 그리고 아주 가끔 무심한 눈길로 살짝 웃었다. 그거라도 난 좋았다.


그러다가 사라졌다 / 떠났다.


그러다가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건 내 시점이고, 그녀가 어딘가로 떠났다. 2025년 10월경이고, 내가 9월 초부터 11월 말까지 아웃리치 활동을 쉬고 있던 중간 언제다. 활동 복귀 후 정신병원으로 행정입원 되었을 가능성을 떠올리며 그녀를 아는 노숙인들, 경찰, 다시서기센터 사회복지사에게 수소문해도, 아무도 모른다고만 했다. 광장에서도 그녀의 거처는 불규칙하게 자주 이동했고, 마지막 광장 거처였던 광장 파출소와 다시서기센터 사이 커피 자판기 근처에서는 가장 길게 11개월 정도 머물렀으며, 그러다 광장을 떠난 거다. 2026년 3월 초, 한 남성 노숙인으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그녀 자리 근처에서 자주 봐 왔던 그 남자 말로, 한 달 전쯤 서소문 공원에서 봤단다. 그 자리는 이제 독극물에 쩔어 폭우가 쏟아져도 소독을 아무리 해도 독기가 씻겨나가지 않는다고 자주 ‘씨부렁’대더니, 추워지기 시작한 11월 중순 어느 날부터 텐트도 짐도 거의 그대로 둔 채 돌아오지 않더란다. 아직 죽을 나이는 아니니 어딘가로 갔으려니 했단다. 그 며칠 전 후원물품을 주려고 텐트 문을 연 누군가한테 ‘아주 뭐 쌩지랄을 쳤’단다. 화영이 안보이자 서울역측은 ‘3일 내 불법방치물을 치우라’는 공고문을 붙였고, 3일을 채우고 난 이른 아침에 청소차가 와서 싹 쓸어가 버렸단다.

서소문공원으로 찾아가 볼까 하다, 접었다. 피하느라 떠났는데 작정하고 찾아가면, 나를 독극물 살포자로 더 확신할 수 있다. 그녀에게 나는 독극물 살포자인지 아닌지, 미친년인지 아닌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듯하다. 다시 만나기를 원하지만, 모를 일이다. 그 비슷하게 만남과 비껴감과 충돌할 뻔, 욕 싸지르기와 사과와 모르는 척 등이 반복되다 어느 날 떠난 여자들 여럿을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나야 내 방과 광장 사이를 오락가락 하지만, 그녀들은 서울이든 수원이나 부산도, 중대형병원 보호자 휴게실이나 인천공항 대합실도, 정신요양병원도 교도소도 기도원도, 문단속이 덜 된 어느 빌딩의 계단참이나 길 어느 귀퉁이에서도, 되는대로 머물다 쫓겨나거나 떠난다. 살림살이가 간단해서다. 한바탕 살림살이를 모아대다, 짐 때문에 이동이 힘들어져 한곳에 길게 머물다, 어느 날 살림살이를 빼앗기거나 날 잡아서 싹 버린다. 짐 버리기는 떠날 준비인 듯하다. 아직 떠날 작심도 버릴 준비도 안 했는데, 구청과 경찰과 서울역 측이 쓰레기차에 짐을 실어 가 버리면 악을 쓰고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차라리 잘 되었다는 듯 마음을 턴다. 다반사여서다. 그러다가 다시 짐을 모으거나, 또 떠난다.

 그녀가 광장에서 탈주한 이유는 안전을 위해서였겠지만, 사실 광장 파출소 근처는 여성노숙인에겐 상대적으로 안전한 노숙공간이다. 요즘 서소문 공원에는 노숙인이 거의 없고 밤이면 다른 시민들도 거의 없어, 여성이 노숙하기엔 아주 위험한 공간이다. 무료급식이나 각종 후원물품도 광장이 훨씬 유리하다. 그녀로서는 (성)폭행보다 독극물이 더 두려웠을까. 여러 위험들 사이에서 어떤 위험을 어쨌든 피해 보려면, 다른 위험들은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각자의 맥락과 처지에 따른 각자의 합리가 있다. 독극물과 사람들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순교자들의 성지가 있는 서소문공원으로, 하나님과의 직통과 고립으로 이주했나 보다. 혹은 내 추정과 달리 더 무모하고 목적 없는 임시적 이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또 떠나거나 떠내려가다 잠시 머물고, 또 표류(漂流)하다 죽음에 빠지지 않으면 계속 유랑(流浪)할 것이다. 홀로 하는 유랑에서 문득 만나는 어떤 타인들의 친절이고 다정함이고 복지고 뭐고는, 그녀로선 대체로 쓸모없다. 자기 정신으로 자기 삶을 살아낼 거다.













최현숙 Choi Hyunsook


광장의 “미친” 여자들 (2)

최현숙은 ‹광장의 “미친” 여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여성 노숙인들의 말과 삶에 대해 쓴다. 전시 기간 동안 한 달에 한 번, 네 편의 글을 연재한다. 그야말로 퀴어인 ‹광장의 “미친” 여자들›의 마지막에는 최현숙 자신이 있다.

일시: 2026. 3. 30.
장소: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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