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미친” 여자들 (1)
“문이 없어졌어”

1.

어느 목요일 아침 8시 40분경 여성홈리스쉼터 센터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화영은 벌써 와서 샤워실에 들어가 있다, 경숙(가명, 쉼터 관리자) 선생님은 사회복지사들 교육이 있어 쉼터를 하루 쉴 거다, 자기는 깜빡 까먹은 식재료가 있어 인근 후암시장을 다녀와야 한다, 그러니 지금 바로 좀 와줄 수 없냐?’는 거였다. 요약하자면 화영만 혼자 두고 센터를 비울 수 없으니 오늘은 좀 일찍 와서 ‘보초’를 서 달라는 거다. 

센터에서의 내 역할은 1주일에 하루 목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센터 이용자인 여성홈리스들(주로 노숙인들과 인근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소위 ‘관리 보조’를 하는 거다. 점심 준비로 바쁜 두 여성 관리자들(센터장과 경숙)을 대신에 이용자들과 대화하며 면면을 파악하고, 필요한 사람에게는 노숙인 복지 등 상담과 지원도 하며, 부지불식간에 화다닥 터지는 이용자들 간 충돌이나 사태에 하는 데까지 대처하며 관리한다, 그녀들 중 일부가 관리자들 몰래 벌이는 꿍꿍이에 대해 감을 잡아보려고도 하고, 별일 없을 때는 수다를 떨고 대화를 하다가 나누다가, 10 ~15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공동식사를 한다. 관리자 2인과 수시로 회의나 대화도 한다. 때로 ‘관리 불가능’한 여자가 오면, 하는 데까지 해보다가 몇 번의 논의를 거쳐 센터장이 출입금지를 통보하기도 한다. ‘관리 불가능’의 양태는 정신장애나 성질머리나 습(習)으로 인한 어떤 언행들이 다른 센터 이용자들에게 불화와 충돌과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과도한 자기중심과 지 맘대로, 일탈과 반항, 혼란과 야생, 무모함과 고집불통 등의 모습이다. 드물지만 경찰을 부른 적도 있다. 나는 ‘센터에서의 관리 불가능’ 결정에는 대체로 동조해 왔고, 센터 밖 광장에서는 관리 불가능한 여자에 더 꼴린다. ‘쫓겨난’ 여자들을 더 주목하고 쫓아다닌다. 내 상황과 판단에 따라 다가가기와 거리두기를 반복하지만, 사실 노숙판에서 밀고 당기기의 주도권은 우선 노숙인 당사자들에게 있다. 쉼터에서 그녀들에게 나는 센터 소속은 아니지만 관리자 중 하나이고 권력은 그들보다 하위이다. 나 또한 관리자와 이용자의 경계를 들락거리며, 필요와 상황에 따라 권력 부리기와 권력 없는 척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그럴 때마다 내 권력질을 노려보며 의심하느라 속이 시끄럽다. 한편 광장에서는 속이 좀 편하다. 광장에서의 나는 그녀들에게 노숙인 인권 활동가이자 후원 물품과 여러 서비스의 제공자이다. 받는 자의 필요와 기분과 상태가 관계 맺기나 이어가기의 가장 우선적 요소다. 노숙인 광장은 그/녀들의 것이다. 정부와 경찰력과 서울역 측이 갖은 규율과 인력을 동원해 그들을 관리하려 하지만, 관리당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무효하다. 물론 필요가 앞서는 경우라면 관리 범주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노숙을 작정해 버린 사람들은 누구에게든 포획되지도 파악되지도 않는다. 감시해 봤자 종(種)잡을 수 없어 감시하는 측만 속 시끄러워진다. 기껏해야 벌금을 때워 줄 빵살이거나 좀 긴 국립대 기숙사[감옥쟁이들 사이에서 감옥을 일컫는 은어] 생활이다. 아주 덥거나 아주 추운 계절엔 의식주를 간편히 해결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자유를 포기하기도 한다. 정신장애나 발달장애가 심한 경우 강제로 행정입원되는 경우도 잦다. 

원래 센터는 주 3일 화, 목, 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여는데, 이용자의 사정에 따라 관리자들과의 합의로 좀 일찍 오거나 늦게까지 이용하기도 한다. 화영은 독극물 망상으로 인해 샤워실이나 세탁기 사용, 공동식사 관련해 아예 예외적 배려를 받는 편이고, 그로 인해 다른 이용자들의 불만이 많지만 ‘아픈 사람’ ‘미친년’ 등의 이유로 이용자들도 웬만하면 봐주다가, 어디서부턴가 무언가로 서로 감정의 주파수가 꼬여 와장창 충돌이 일어나곤 한다. 

센터와 내 방과의 거리는 걸어서 10분. 전화를 끊고 서둘러 챙겨 9시 10분경 도착했고, 센터장은 화영이 들어가 있는 샤워실을 가리키며 자기는 20~30분은 걸릴 거라며 센터를 나갔고, 다른 이용자들은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거실 큰 테이블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상황이 터졌다. 화영이 샤워실 문을 쾅쾅 두드리며 센터장을 부르면서 악을 쓰기 시작했다. 급한 대응과 별도로 뇌를 빠르게 식힌다. 말도둑질을 위해 휴대폰 녹음기부터 누른다. 센터장에게 연락했는데, 휴대폰 울림 소리가 주방에서 났다. 녹음 상태를 확인하고 샤워실로 간다. 

화영 씨, 나 미경이에요. 센터장님은 사야 할 게 있어서 시장에 잠깐 갔어요. 곧 오실 거야. / 누가 문을 막아버렸어. 문이 없어졌어. 나 좀 꺼내줘요. / 화영 씨, 문은 화영 씨가 안에서 잠근 거니까 손잡이를 돌려 봐요. / 쾅쾅쾅쾅, 손잡이도 없어졌고 문도 없어졌어. 나 죽을 거 같아. / (문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고, 화영의 목소리도 점점 크고 다급해져갔다.) 왜 미경 선생님이 있어? 센터장님은 왜 나를 여기 가둬 놓고 문을 막아버리고 어딜 간 거야? 문이 없어졌어. 나 여기서 죽나 봐. / 화영 씨, 괜찮아요. 곧 나올 수 있어. 우선 침착하게 내가 숫자 세는 거에 따라 숨을 천천히 크게 쉬어 봐요. 자아, 하나, 두울, 세엣..../ 야 이 미친년아, 숨이 막혀 죽을 거 같은데 어떻게 숨을 쉬어? 쾅쾅쾅쾅, 나 죽이려고 너랑 센터장이랑 짠 거잖아. 니네가 문을 없애버린 거잖아. 

“미친년”이라는 호명에 자꾸 웃음이 삐져나온다. 피차 미친년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문은 그대로 있어. 센터장님도 곧 오실 거야. 지금 내가 손잡이 돌리고 있으니까 안에서도 손잡이가 흔들릴 거야. 그 손잡이를 잡고 돌리기만 하면 문이 열려. / 문이 없어졌는데 무슨 손잡이가 있다 그래? 누가 문을 막아버렸어. 나를 죽이려는 거야. 너도 영자 년이랑 같은 편인 걸 난 벌써부터 알고 있었어. 내가 몰랐을 거 같아? 그래, 이년들아 날 죽여라 죽여. 

문 두드리는 소리와 악쓰는 소리가 점점 잦아들더니,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작게 시작한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샤워실 열쇠를 어디에 보관하는지 나는 모른다. 주방으로 가서 가장 얇고 긴 칼을 가져왔다. 

“화영 씨, 내가 문 열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하나님, 나 좀 살려주세요. 저년들이 오늘 나를 죽일 건가 봐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난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요. 난 살아야 돼요.” 

울음소리도 기도 소리도 다시 커진다. ‘죽을 수 없다, 살아야 한다’는 외침이 매번 귀에 걸그적거린다. 흔해 빠진 문구에는 속임수가 많다. 문틈으로 칼을 밀어넣으니 문은 쉽게 열렸다. 화영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으로 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욕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무릎 사이에 박아 넣고 있다. 세면대와 샤워꼭지에서는 뜨거운 물이 쏟아지고 있었고, 수증기가 욕실 안을 뿌옇게 채우고 있다. 이 욕실에는 창문이 없다. 바닥에는 가방, 신발, 샴푸와 세제 병, 검정색 비닐 주머니 너댓 개 등이 물과 거품을 뒤집어쓴 채 널려 있고, 커다란 트렁크 하나는 물이 닿지 않도록 변기 옆에 있다. 화영은 독극물 의심 때문에 센터가 제공하는 공용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특정제품의 비누와 세제와 샴푸만을 별도로 사서 가지고 다닌다. 누구든 자기 몸이나 짐에 독극물을 뿌릴 거라는 의심 때문에 모든 소지품과 짐을 자기 옆에 두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빠글빠글 파마를 한 긴 머리카락과 몸에는 거품이 부글거리고 있다. 화영은 아직 머리를 무릎 사이에 박은 채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악을 쓴다. 

“나가! 저리 가! 가까이 오지 마!”
그녀가 광장에서 수없이 외치는 소리다. 
“알았어요, 화영 씨, 안 들어갈게요. 이제 괜찮아요. 문 열렸으니 나올 수 있어요.” 

부지불식간에 올라오는 역겨움을 급히 끄느라 그 틈에 동정 따위가 스며들세라, 뇌를 최대한 중지시킨다. 겨우 고개를 든 화영의 눈길이 가장 먼저 간 것은 내 오른손에 들려 있는 칼이었다. 아차! 얇지만 길고 날카로운 칼. 화영이 아예 발악한다. 

“살려줘요! 난 이렇게 죽을 수 없어요!”

두 팔과 손으로 머리 전체를 꽈악 감싸 무릎 사이로 꾸겨 넣고, 벽을 향한 채 몸체를 동그랗게 말았다. 깡마른 몸이라 저 자세가 나오는구나. 거품을 뒤집어쓴 채 동그랗게 말린 작은 몸체가 와들와들 떨고 있다. 뒷목에서 시작해 엉치뼈와 꼬리뼈로 이어지는 척추 기둥, 쇄골과 견갑골, 낱낱이 드러나는 갈비뼈들, 그 위로 연분홍의 껍질 한 겹과 짙고 옅은 갈색의 반점들. 잘 보존된 미이라를 둥글게 말면 나오는 장면이겠구나. 죽음을 이미 담고 있으면서 죽지 않겠다는, 죽이지 말라는 인간 보통의 갈구. 그러려니 하면서도 징그럽다. 흔해 빠진 죽음, 게다가 다 죽는다는 걸 모두가 아는 마당에 나만의 / 누구만의 죽음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나 감정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아, 미안해요. 놀랐겠네. 문 열려고 주방에서 가져온 칼이에요. 도로 갖다 놓고 올게요.”

욕실을 나와 주방 한쪽에 칼을 두고 다시 욕실로 갔다. 칼로 인해 화영이 더 심하게 급발진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화영님, 많이 놀랐죠? 이젠 다 됐어요. 우선 비누 거품부터 씻어내고 밖으로 나와요. / 들어오지마! 거기 있어! 

동그랗게 말린 몸을 풀면서 머리와 팔과 손을 휘저으며 거부는 하면서도, 소리는 좀 차분해졌다. 눈은 아직 광기와 허기가 뒤엉킨 채 퀭하면서 희번덕거린다. 자세 때문에 몸뚱이 어딘가가 아픈지 벽에 등을 기대 고쳐 앉으며 겨우 들릴 만한 소리의 말을 흘린다.

“문은 닫지 말고, 저만큼 떨어져 있어. 어디 가지는 말고.” 
“알았어요. 밖에 있을 테니 천천히 해요.”

* * *

화영(가명). 1960년대 중반생의 정신장애 여성노숙인. 165센티 정도의 키에 깡마름. 나와 2020년 상반기부터 2025년 9월까지 많을 때는 주 1~2회, 드물 때는 월 1~2회 만나왔다. 9월부터 3개월 간 내가 노숙인 광장 아웃리치 활동 휴가를 쓰던 사이 언제 그녀가 없어졌다. 2020년 상반기는 내가 서울역 노숙인 광장을 드나들기 시작한 시점이고, 그녀가 언제 서울역으로 흘러들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동안 수차례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봤지만, 질문과 답은 매번 어긋나다 미끄러져 서로를 놓쳤다. 일부러 답을 피하거나, 기억이 안나는 걸 수 있다. 

만남 초기에는 경증의 정신장애라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해졌다. 병식(病識, 자신이 환자라는 인식)이 없어, 병원 방문이나 상담을 권했다가는 심하게 흥분하면서 관계가 나빠졌다. 노숙인들 상대로 돈벌이하는 병원 관계자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 감금당했던 경험도 있다고 했다. 20여 년 정도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조기 은퇴를 했단다. 교사 경험에 관한 상세한 묘사나 내용의 일관성으로 볼 때, 사실로 여겨졌다. 어떤 이야기를 할 때면, 정신장애가 전혀 없는 문화적 상층의 진지하고 다정한 중년여성이다. 내가 작가라는 걸 알고는 부러워하며, 언젠가 자기가 죽거나 오래 보이지 않으면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달라고 했다. 지금도 일정액의 연금이 나오고 있어 경제적으로는 여유 있는 편이었다. 노숙을 하는 이유는 독극물 때문에라도 방, 집, 시설 등 갇힌 공간에 대한 강한 불안감이나 거부감 때문으로 보였다. 

2.

회의 중에 첫 문자를 확인하면서 나는, 3년간 친했다, 이후 2년간 친했다 싸웠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다, 5년째 어느 날 사라졌다가, 한 달 정도 지나 경상도 모 정신병원에 있다며 통화를 걸어 온 다른 ‘미친년’의 문자려니 했다. 1년에 휴대폰 번호를 7, 8회 넘게 바꿔대는 그녀는 나랑 사이가 좋고 나쁘고와 상관없이 바뀌는 번호를 내게 꼭 알려줬고, 그럴 때마다 길거나 짧게 통화나 문자를 한다. 대화랄 것 없는 ‘밥은 먹었냐’, ‘몸은 어떠냐’, ‘여기는 너무 심심하다’ 정도의 문자나 말을 주고받으며 우리 사이의 끈이 드리워져 있음을 확인하는 정도로 지내고 있다. 이번 문자도 발신인 이름이 뜨지 않아 또 번호가 바뀌었나 보다 했다. 근래의 심심풀이 문자와 달리 딱 봐도 ‘빡친’ 상태의 문자인데다 길기도 해서, 회의를 마치고 읽어야겠다 싶었다. 1~2분 간격으로 드르륵 대는 문자를 받아만 놓고 있다가, 회의를 마치고 다시 들여다보고서야 화영이 보낸 문자라는 걸 알았다. 화영과 나는 아직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내 번호를 얻었나 보다. 일단 발신인 이름부터 저장했다. 

샤워실 사건 이후 3주 정도, 그녀와 나 사이는 무탈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와 나를 따로 불러내서, 혀짧은 소리로 웃으며 미안하다고도 고맙다고도 했고, 다른 사람들에겐 말하지 말아 달라고도 했다. 센터장과만 사실관계를 길지 않게 공유했고, 이용자들에게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던 터다. 화영의 뒤집기만큼 나도 확 뒤집어지지는 않아 속이 어색했으니 겉도 좀 어정쩡했겠지만, 그녀에 맞춰 나도 웃고 다정하고 친절했다. 그녀야 독극물 타령 때문에 이용자들과 작은 문제들을 계속 일으켰지만, 나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거나, 불가피할 경우 그녀 편에서 상황을 관리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욕문자가 쏟아진 거다. 첫 문자가 내용상 나와의 일이 아니어서 센터의 다른 이용자에게 보내려는 걸 내게 잘못 보낸 건가 싶었는데, 문자 중 ’작가‘ 어쩌구가 두 번 찍힌 걸 보고 오해가 좀 심하고 해독도 어렵지만 내게 보낸 문자인 건 확실했다. 여섯 차례로 나눠 쏟아진 문자 세례를 찬찬히 읽었고, 눈도 뇌도 뒤엉켜 수차례 읽어도 제대로 해독하기는 어려웠지만 분노는 확실하게 전해졌다. 

인간도못돠는살안마년5.18목요일에나밥받는사이에거실방에서내모든물건에맹맹독극물뿌리고핸드폰케이스훼손시키고컵가져간살인만마년당장에천만갈래로짝짝찢어발겨져서뒈져없어져신성한여성쉼터에온갖살인마짓거리하러오지마

또내가화장실청소한이후에세면기에가래침뱉어놓고바닥에오줌싸고똥싸서냄새나게하고양변기위비누갑거꾸로놓고휴지버려놓고등등한인간도못되는살인마년당장에천만갈래로짝짝찢어발겨져뒈져없어져라신성한여성쉼터는사람이오는곳이야인간도못되는살인마년은천만갈래로짝짝찢어발겨져서뒈져없어지고다시는오지마행한대로받는거고뿌린대로거두는거지

난인간도못되는살안나는린간취급안하거든나쳐봐다보지마니년이무슨작가라고자꾸왜말을걸어말걸지마린간도놋되는샇인마가감히나항테말걸어인간도놋괴는살인마징그럽고더럽고소름끼치는냄새풍기며내물건옆에얼씬거리지마행한대로작은소고뿌린대로겨구는거지한대로해둘테이기가려나

인간도못되는살인마가작가라며활동가라며갖은위선떨고센터장님속이고신성한여성쉼터를감히드나들어인간도못돠는살인마밥쳐먹고살자격없어당정뒈져없어져

인간도못되는살인마년5.23.화에내가잠깐옷고르러주방에온사이에내주방에서내물건잇는거실로가서내모든물건에맹맹독극물뿌리고치약치솔가져간살인마년당장에천만갈래로짝짝찢어발겨져서뒈져없어져

낯짝에설인마라다써잇고딩그렵고더럽고소름끼치는살잉나앰새가펑펑풍겨안햇다고위선떨면살인마짓거리한게없여지냐인간도놋되은샇인마밥쳐넉고살지날고당장듀ㅔ져없어져

눈으로 읽기에는 너무 헷갈려 세 차례 소리 내어 읽으며, 해독보다 먼저 다행감이 들었다. 적어도 이 문자를 보내는 동안에는, 그녀가 나를 관리자나 관리보조가 아닌 ‘쉬운 여자’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정신장애로 인한 증상이 자신과 주변을 괴롭히는 것과 별도로, 그녀 입장에서 자신은 정당하다. 와해되고 깨지는 분노는 그 정당함이 훼손되고 의심받고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감정이다. 나는 슬픔과 찌그러짐을 넘어 분노하는 가난한 여자들을 좋아한다. 특히 노숙판에서 가끔 만나는 욕 잘하는 여자들이 부럽다. 욕을 싸지르는 순간이나마,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싶어서다. 심지어 나를 향한 욕일 때도 즉자적 당황은 금방 없어지고 통쾌함을 느끼며, 두고두고 기억과 마음으로 되새김질한다. 물론 폭력 습관이 있는 여자에게서 협박성 욕을 들을 때면 거리를 조정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그 여자 생각을 많이 한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내 어려움 중 하나는 “밤길 조심해라. 뒤통수를 도끼로 찍어버릴 거다” 정도의 쌍욕을 내질러놓고 며칠 후 전략적 애교임이 분명한 표정과 말투로 친근하게 다가오는 여자들에 대해 아직 감정과 표정의 전략적 전환이 쉽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친년들”을 쫓아다니며 기록이라는 걸 하다 보면, 나도 내 글도 미친년처럼 되어간다. 둘이 혹은 여럿이 길바닥이나 지하보도에 퍼질러 앉거나 돌아다니며 수다를 떨고, 몰래 쫓아다닌다. 그녀/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들으며 녹음기 껐다 켜기를 반복하면서 그녀들 말에 내 말을 뒤섞어가며 녹음을 한다. 벌어지는 상황에 필요한 대응을 할 때는 정신줄을 붙잡으려고 의식적으로 뇌를 냉랭(冷冷)하게 만들면서도, 그녀를 향한 시선과 말은 다정함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냉정과 다정이 수시로 엇갈리고, 때로 그 엇갈림을 그녀에게 들키기도 한다. 나중에 글로 만들기 위해 혼자 앉아 기억을 되짚어 추가 기록과 필요한 메모를 하고, 녹취록을 수차례 뒤엎어가며 수정/삭제/축약하고 정리/편집하며 읽어 나가다 보면, 내 머릿속도 글도 금세 “미친년”처럼 엉켜버린다. 그러다가 급 피곤해져 글 바깥으로 나가지만, 별수 없이 다시 돌아와 뒤적이고 뒤엎고 수정/삭제/축약을 다시 살렸다가 죽였다가 하느라 또 뒤죽박죽이 된다. 광장의 ‘미친년’들에 대해 나는 왜 무엇을 어떻게 알리고 싶은가.




사진은 글의 배경 중 하나인 ‘여성홈리스쉼터’ 샤워실













최현숙 Choi Hyunsook


광장의 “미친” 여자들 (1)

최현숙은 ‹광장의 “미친” 여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여성 노숙인들의 말과 삶에 대해 쓴다. 전시 기간 동안 한 달에 한 번, 네 편의 글을 연재한다. 그야말로 퀴어인 ‹광장의 “미친” 여자들›의 마지막에는 최현숙 자신이 있다.

일시: 2026. 3. 30.
장소: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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